무기력과 예민함의 끝

아픈 아이를 둔 엄마

by 하랑

“빨리 여기로 와줘야겠어.”


이 한 마디에 정신없이 달려간다. 외할머니와 나갔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내 아이가 괜찮기만을 바라고 갔던 것밖에 없다. 그래서 일단은 달려가야 했고, 혹시나 모를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다. 얼마 되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 거리 동안에 나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저기 뛰어오는 사람이 엄마인가 봐”


어렴풋이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 정도로 다친 것일까? 일단 아이를 보자마자 와락 안고 괜찮은지 확인했다. 외상은 크게 문제없었고 과자를 먹던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오열을 했다. 오열하는 아이를 달래며, 자초지종을 외할머니를 통해 들었다.


아이가 카트 안에 서서 타다가, 바닥에 깔린 전선에 카트가 울렁거리며 카트 밖으로 떨어진 것이다. 순간 아찔했다. 머리를 다쳤으면... 그래서 머리를 보았는데 머리에 상처가 있다. 일단 또 달려야 했다. 알아둔 병원으로 20킬로가 넘는 애를 안고 달려야 했다.


소개받은 병원은 대기 환자가 너무 많고 곧 문 닫을 시간이라고 환자를 거부했다. 나는 미치겠는데. 하아. 머리를 최대한 굴려 외할머니가 다니는 정형외과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사람이 적었고, 아이의 상태를 이야기하니 그 정도면 여기서 볼 수 있다고 하여, 신속하게 접수를 했다. 의사는 아이의 머리를 만져보고, 크게 이상이 없을 것 같지만 X-ray를 찍어보길 권유했다. 일차적인 안도감에 이제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는 같이 X-ray를 찍기 위해 X-ray 실에 들어갔고. 제법 4살 아이에게 어려울 수 있는 디테일한 포즈를 요청받았다.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우리가 평소에 찍는 사진이랑 똑같은 거라고 일러주었다. 아이는 놀랐을 법한데도, 의젓하고 차분하게 촬영에 임했다. 움직이지 말라는 어려운 과제까지 잘 수행했다. 마치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주 듯.


포즈를 잡아주던 방사선사는 촬영하러 들어갔다. 기특하게 잘 있는 아이를 보며, 혹시나 있을 문제에 걱정하는 순간. 아이가 치아를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사진 찍는다는 말에 표정을 짓는 것이다. 그때부터 정말 마음이 놓였다. 괜찮은 것 같았다.


첫째 아이는 늘 이랬던 것 같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새벽에 응급실을 갔을 때도, 너무 걱정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엄마를 보며 싱긋싱긋 웃고 잘 버텨주었다. 물론 너무 아파서 끙끙대며 앓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래도 어떤 때는 끝없이 수다를 떨 듯 옹알이를 하기도 했고, 열심히 파닥파닥 되며 놀기도 했다. 체력이 좋아 잘 버티는 것일까?


늘 아픈 아이 앞에서 엄마는 죄인이 된다.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무기력해지고, 혹시나 우리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극도로 예민하다. 주사를 제대로 못 맞히면, 따지며 간호사를 교체할 만큼 예민하다.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거뿐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둘째가 아팠다. 열이 났다. 갓난아기에게 열은 쥐약이다. 새벽 내내 수건으로 열을 식히고, 체온을 쟀다. 열이 조금 떨어졌지만, 아이가 아픈지 계속 끙끙 앓았다. 더욱이 지금은 코로나로 열이 있는 상태에서 응급실을 갈 수가 없다. 그리고 너무 어려서 집에 있는 해열제도 먹일 수가 없다. 방법은 하나 최대한 열이 내리도록 옷을 벗기고, 수건을 갈아주며 닦을 수밖에.


해가 뜨기 시작했다. 주말이라 집에 있는 첫째를 빠르게 준비시키고 또 달렸다. 진료 시간 전부터 접수하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이의 온도는 38도. 애가 열이 있어도, 갓난아이라도 병원은 제시간에 시작한다. 욱하는 마음에 소리치며 빨리 봐달라고 하고 싶지만, 참는다. 역시나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를 꼭 안아주는 것뿐. 또 무기력함과 예민함을 장착하였다.


끙끙거리며 내 품에 안겨 링거 맞는 아이를 볼 때면 마음이 좋지 않다. 역시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둘째도 미소를 보인다. 이 아이들은 뭘까? 아픈 순간에도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다. 아들 둘은 체력이 좋고 튼튼해서 아파도 컨디션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것일까? 무기력하고 예민한 엄마에게 조금은 편안해지라고 신호를 보내는 걸까?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그래도 고맙다.


아! 그리고 첫째가 카트에서 떨어진 그날, 샤워 후 아이는 미끄러져 넘어졌다. 무척 놀랐지만 미끄러져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이놈은 멀쩡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왜냐면 미끄러졌지만, 본능적으로 낙법을 하는 모습을 봤다. 분명히 멀쩡하다. 미친 운동신경.


그래, 그렇게 건강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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