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말을 배운다는 건

웃음, 잔소리 그리고 배움

by 하랑

아이가 말을 시작한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아이와 소통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난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수많은 언어 속으로 나를 무참하게 던져놓은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나는 그 속에서 새롭게 언어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소통을 점검하고 사용하게 된다. 내가 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쳐주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아이를 통해서 언어와 소통을 다시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의 의도가 아이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을 때는 전달하는 나의 말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 선택을 했는지, 전달할 때 아이가 들을 수 있는 환경 또는 조건을 만들었는지, 말의 빠르기는 적절했는지 혹은 무심코 생략하는 내용은 없었는지 등 고민하게 된다. 또한 아이가 어떤 의미를 전달할 때 아이의 말을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아이의 상황, 과거의 경험, 비언어적 내용, 언어적 내용, 발음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여 편견 없이 면밀히 관찰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문뜩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 있다. 아이가 상황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고, 배우는 것과 경험이 많아지고, 문장으로 말을 하게 되면서 우리 사이에는 역할이라는 게 생겼다. 단순히 엄마와 아들의 역할보다는 그 하나하나의 캐릭터 특징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껏 자세히 몰랐던 아들의 성향을 말속에서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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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실수였어, 잘 몰랐어, 라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하는 편이다. 부모라고 권위를 세우기 위해 인정하지 않고 뻣뻣하게 있는 모습을 나는 개인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하고, 잘 못 한 것이 있으면 미안하다, 실수였다, 몰라서 그랬다 하는 이야기들을 내뱉는다. 그에 따라 아이는 듣고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더 떼를 쓰거나, 울거나 고집을 피우지 않게 된다. 그래서 더욱 솔직하게 부모의 감정을 아이에게 표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여느 때처럼 첫째는 나를 도와 심부름을 해주었다. 언제나 요청하면 잘 도와주는 아이라서 심부름도 곧잘 한다. 특히나 동생 케어에 정신없는 엄마를 도와주는 아들이다. 그날도 동생 기저귀 심부름을 해주었고, “고마워, 윤오야.”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뜻밖에 아들의 피드백이 돌아왔다. 보통 때였으면 “응”, “알았어.”라고 말하거나 씩 웃는 걸로 피드백을 주는데, 그날은 “고맙긴 뭘”이란 단어로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 시크함은 무엇인가? 순간 잘 못 들은 줄 알고 몇 번을 다시 물어봤던 것 같다. 도대체 누구한테 들은 것일까? 그 말이 너무 귀여우면서도 웃겼다. 저런 표현은 참으로 참신했다. 어제도 아들은 “고맙긴 뭘”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이제 엄마가 그 포인트에 빵 터지는 걸 아는지 주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아들은 상대의 피드백에 민감한 아이이고, 어디서든 들었던 문장을 상황에 맡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좋다. 상황 이해력이 빠른 것이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참으로 좋아하고 우리 사이의 관계는 다행히 아직까진 수평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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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규칙, 규율을 가르치는 게 참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규칙, 규율을 배우고 사회성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절도 배우며, 조절력을 통해 자아존중감이 높아지게 된다. 특히나 우리 아들에게는 더욱이 중요하다. TV를 볼 때, 놀이할 때 등 시간제한을 정해놓는다든지. 놀이하고 그다음 놀이를 하고 싶을 때 정리를 반드시 한다든지. 여러 가지를 같이 협의하여 설정한다. 그래서 그런지, 성향이 그런지 아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꽤 잘 지키는 편이다. 어린이집 들어갈 때 손 소독제 하고 온도를 체크하는 것을 부모나 선생님이 놓칠 경우 본인이 챙겨서 할 정도이니깐.


그런 아들은 본의 아니게 나에게 잔소리를 할 때가 있다. 같이 차를 타고 갈 때 잔소리 같이 이야기를 한다. “빨간불이니 브레이크를 밟아야 해”, “지금 가면 안 돼”, “천천히 가줄래?” 등 쉴 틈 없이 나에게 제안과 제한을 한다.


그러던 어떤 날 여느 때처럼 아이들을 재우고 육퇴를 즐기기 위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항상 남편과 같이 보고 먼저 방에 들어가거나 같이 정리하고 방에 들어가는데. 그날은 잠을 자기 싫어서 혼자 거실에 더 남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나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한 번씩 중간에 잠에서 깨고 나를 찾는 아들이 그날도 나를 찾았는지 방에서 나를 찾다 없어서 거실로 나와 나를 발견했던 것 같다. 약간 성질이 난 듯한 말투로 “엄마, 여기서 자면 어떻게 해!”라며 소리를 쳤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주섬주섬 정리하며 방으로 들어갔던 그때는 밤늦게까지 TV보다 아빠한테 혼난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우리 아들과 나는 가끔 수평보다는 수직인 것 같다. 적어도 아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의심해본다. 그리고 아들은 원리원칙을 중요시 생각한다. 그래서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해 인지가 빠르고 타인이 그것을 어겼을 때는 어디서든 잔소리 폭격기가 된다. 이때 아들의 말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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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언어 발달은 집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TV를 통해서, 어린이집 활동을 통해서, 친구들을 통해서,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등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언제 어느새 저런 말들을 할 수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우린 부산에 살지만, 사투리가 심하지 않다. 억양을 배울 수는 있으나 단어 선택에 사투리는 없다. 심지어 아빠는 서울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늘 물고기 보고 물괴기라고 한다.


아이와 나는 자기 전에 늘 오늘 있던 이야기, 책 읽기, 그림자놀이 등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늘 서로 삐지고 화해하길 반복한다. 그걸 보는 외할머니는 맨날 엄마랑 아들이 싸우느냐고 이야기를 한다. 또 어떤 이유로 삐진 날이 있었다. 이번은 아들이 삐졌다. 즉시 나는 사과를 했다. “미안해”라고. 그러면 보통 “알았어.”하고 다시 쫑알거리기 마련인데, 그날은 조금 진지했다. 아들이 차분하게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엄마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손으로 (아픈 부위(가슴)에 대고) 쓰다듬으면서 ‘미안해 윤오야’ 이러는 거야”라고 설명을 했다. 대충 듣고 아픈 부위에 두세 번 쓰다듬으면서 “미안해”라고 하니, 그건 아니란다. 쓰다듬는 건 한 번만 해야 한다고 다시 하라고 한다. 다시 제대로 하고 나서는 “이제 됐니?”라고 물었을 때 “응”이라고 답을 한다.


융통성이 없다. 또 어디서 무엇 배웠구나. 그 출처가 어린이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엔 화해하는 방법을 아들에게 배웠다. 진심으로 사과하기. 그래 온 마음을 담아 표현해야 한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아들은 사과받는 것도 좋아한다.


하루하루 커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만, 참 너로 인해 나도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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