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나의 거울
우리는 아이를 키울 때 이런 말을 가끔 할 때가 있다.
“넌 도대체 누구 닮아서 그런 거야?”
닮긴 누구 닮아, 엄마 아님 아빠겠지.
그 유전자가 어디 갈까? 그 생활 방식이 어디 갈까?
그래, 다 보고 배웠겠지. 아니면 우리가 물려준 타고남이겠지.
아이가 말 못 하고 무언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미숙할 때는 우린 외모로서 이야기한다.
“옛날 네 엄마랑 얼굴 똑같네”
“눈은 아빠인데, 전체적인 느낌은 엄마네”
그렇게 우리는 누굴 닮았는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나 아이는 외할머니 집 가면 엄마의 빼박이고, 친할머니 집 가면 아빠의 빼박이다. 같은 얼굴인데 아이는 천의 얼굴이 되어버린다. 어떤 때는 돌아가신 증조부모도 섭외된다.
아이가 이유식까지 때고 제대로 된 음식을 점점 섭취하게 되면 취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가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선택할 줄 알면서 우리는 아이를 알아가게 된다. 첫째를 키울 때 일이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쥐여주고 나는 내 취향에 맞는 것을 먹고 있었다. 아이는 내가 먹는 것을 궁금해하였고,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맛을 보여준다. 아이는 맛을 보고 자신의 것을 나에게 주고 내 것을 먹겠다고 하고, 그런 상황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빠가 엄마 먹으라고 사 온 걸 본인이 가져가는 일도 허다해진다. 그렇게 난 첫째 아이와 입맛이 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음에 아이는 말을 시작한다. 언어를 학습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한다. 때론 만화 속 캐릭터도 되었다가,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었다가, 엄마가 되기도 한다.
한 날은 남편과 내가 아이들 앞에서 대화하다가 목소리 톤이 높아지려고 할 때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싸움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서로의 주장이 높아지려고 할 때였다. 눈치가 빠른 첫째는 이야기했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마. 우리 모두 싸우지 않아요.”
라며 우리를 말린다. 순간 피식하고 웃었다. 이건 어린이집 선생님이다. 다투거나 부딪히는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은 ‘싸우지 않아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신 거다. 이 아이는 지금 엄마, 아빠를 중재하는 선생님이 되었다.
또 다른 일은 그때 이야기한 “고맙긴 뭘” 사건이다. 아이가 어떤 도움을 나에게 주어서 내가 고맙다고 이야기하면, “고맙긴 뭘”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드디어 알아냈다. 아이는 만화 속 인물이 된 것이다. 우연히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를 같이 보다가 그 속에서 나오는 인물이 “고맙긴 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아! 이거다! 이 아이는 이것을 보고 배웠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가 갑자기 나에게 “대장님”이라고 부르거나 “아저씨”라고 부를 때가 있다. 이건 상황극을 하고 싶다는 신호다. 그럼 난 더 이상 엄마가 아니다. 그에 맞는 대사와 톤, 상황을 이어가 주어야 한다. 그렇게 아이는 만화 속 주인공도 된다.
그리고 최근 둘째가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첫째에게서 더욱더 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는 한창 입으로 모든 것을 탐색하는 시기에 진입했다. 아이는 입으로 탐색도 하지만, 이가 나려는 근질거림으로 더욱더 입에 넣는 행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행동을 본 첫째는 한마디씩 하기 시작한다.
“입에 넣는 거 아니야!”
“여기에 벌레 많아, 아야 할 수 있어!”
“안돼, 내 거야!”
등 본인이 아는 총동원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자신에게 내가 했단 말들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손톱을 뜯지 않게 하기 위해, 혼도 내보고 회유도 해보고 부탁도 해보았었다. 역시나 혼을 낸 것이 기억에 각인되었는지, 첫째는 나의 가장 닮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닮아가고 있었다.
“내가 안 된다고 말했잖아!”
그래, 나도 이 말을 했었단다. 너도 그런 말을 들었지? 그 말을 들은 적 있는 첫째는 동생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단호하고 냉정하게.
늘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만, 부모에게 가장 좋은 모습을 닮았으면 했지만 역시나 무리였나 보다. 아이는 가장 편리할 방법으로 나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새로운 행동이나 새로운 말을 하게 되면 이제 생각해본다. 내가 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그게 긍정적이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좋지 않은 것이면 알려주기 바쁘다. 그리고 인정한다. 그래 내가 그랬었어. 그럼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전에 엄마가 그랬던 걸 보고 그러는구나. 엄마가 아직은 배워가고 있어 실수했던 것 같아. 동생이 지금 어려서 아직 잘 몰라.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줄 수 있을까? 엄마도 너에게 그럴게. 다시 친절히 설명해줄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정된 말을 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 아니라 했던가. 그 말의 뜻을 절실히 느껴 더욱 조심한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아이를 통해 알아가고 있다. 내 아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 그럼 그 방향을 아이에게 강요 또는 권하기 전에 어쩌면 내가 먼저 그렇게 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수습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