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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들리 Mar 23. 2024

돌아온 싱글의 사유

#남파랑 #걷고걷다 #문득

새벽을 가르며 나서는 마음은 그리 산뜻하지만은 않다. 잠도 설쳐야 하고 바리바리 챙겨야 할 짐도 많다. 전달 업무에 피로가 가시지 않은 발걸음이 다소 무겁고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조금 있으면 저길 너머로 지인 부부가 픽업을 할 예정이다. 친구 내외를 알게 된 지는 2년 남짓 되었다. 늘 일하는 시간이 일과에 주였던 나는 일반적인 부부생활을 들여다 볼사이도 또 그런 여유로움 없이 보낸 삶을 살아왔다. 그들의 과거의 역사를 모르는 나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중년의 부부의 일상을 이들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남인 듯 하나인 그들은 뭔가 알 수 없는 가을 햇살처럼 서늘한 듯 푸근함이 있었다. 



나는 20년 차 돌아온 싱글이다. 선택적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상황과 무책임한 태도가 만들어준 상황이 결론을 내어주 케이스였다. 젊은 날 고고한 자존심에 실패한 삶이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고 괴롭히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성숙한 삶을 지향했기에 하루 서너 시간 자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둡고 습한 그 터널을 지나는 견뎌내는 삶을 살았다.


처음은 모든 것이 상대의 탓이었다. 그리곤 그런 선택을 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후에는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을 했다. 생각만 하면 일어나는 분노 때문에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 같아서 단절을 택했었다. 10년 즈음 지나고 분노가 사라졌다. 치열한 내 삶도 지긋했지만 자식 두고 자식을 보지 못하고 사는 삶은 또 얼마나 행복했겠나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남파랑 3코스 영도대교에 도착했다. 봄을 느낄 수 있는 날씨와 햇살에 무거웠던 발걸음도 산뜻해졌다. 

산을 오르기도 관광 명소를 보기도 하고 탁 트인 바다를 보며 걷고 또 걷는다. 각자 무심한 듯 걷다가 지칠 법 한 구간에서 서로를 찾는 몸짓이 보인다. 물을 건네기도 하고 보기 좋은 경관은 나눠 보려고 손짓을 한다.



지난날 많은 듣는 질문 중에 하나는 왜 사람을 만나지 않냐는 말이었다. 새 출발을 하지 않냐는 질문이었다. 젊은 날 나는 상대와 상황의 탓으로 내 삶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조금씩 성숙해 가면서  스스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의 흐름에 맞춰 결혼을 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것을 통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과 그로 인한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이상형을 논하고 설렘을 쫓다가 시절에 맞춰 결혼이라는 제도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지 못한 상황이 왔을 때 무조건 견디기를 선택하다 결국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물아홉의 남자아이가 어른스러울 수도 가장의 역할을 잘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한 거였다. 그 당연함을 그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학교의 청강하는 학생들과 나이가 불과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은 그때에 배우자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못했다. 결국은 이해와 배려 또한 미숙했던 것이다.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해서 의지대로 살고 시간의 제약 없이 하고 싶은 공부와 일들을 했다. 그것이 비록 생계를 위해서라도 하더라도 말이다. 그 대가로 노후의 삶도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한다. 


친구 내외의 무심한 듯 푸근한 삶에서 돌아온 싱글의 사유가 이어지는 걸음이었다.




봄 따라 걷고 걷는 동안 얼었던 마음도 녹아내리고 있었다. 절기에 짧은 봄만큼 인생의 봄도 짦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은 찰나와 같다. 그래서 더 찬란하고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순간에 행복을 느낄 줄 몰랐던 나는 혼자가 편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니 지금이 봄일지 모른다. 흐트러짐 없이 가야 할 길을 걸어왔고 따뜻한 차를 챙겨 배낭에 꽂아주는 아들이 있고 함께 걸으며 함께 웃는 친구가 있으니 지금이 봄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 무뎌지지 않을 상처 모두 지나왔으니 인샌의 봄이다. 지금 더 이상의 번민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무지한 용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니 오늘도 감사하기로.






[남파랑 3코스] 

영남대교 >> 감천마을

21.97km / 5시간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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