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궐산 #하늘길 #자연메시지
겨울이 가는 것이 아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섬진강 줄기를 바라보며 걷는다. 순창 용궐산을 올랐다. 아직은 매운바람이 수차례 스쳐 지나간다. 인생도 절기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인생의 절기에서 늦가을에 태어난 나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20대 중반에 들어서 30대에는 혹한기를 맞이했었다. 꽃샘추위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인생의 절기에서 그간 많은 것들과 맞바꾸며 배운 묵묵한 인내심과 고요한 신중함으로 일렁이는 마음을 타이르고 다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겨울이 떠나갈 땐 미련 없이 손을 흔들어 주리라 다짐에 다짐을 한다. 고맙다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줬으니 나에 성장은 너에 힘이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득하기만 그 시절을 포기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묵묵히 걷고 걸어준 스스로의 의지에도 찬사를 보낸다.
산은 같은 길이어도 오르는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과 내려오는 방향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다르다. 이처럼 인생도 입체라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으로 시간이 쌓인다. 어떤 시인이 오르면서 보지 못했던 꽃을 내려오면서 보았다고 했듯이 중년이 깊어지면서 그 지긋하고 몸서리 처지던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에 서니 내 삶에 꽃이 보인다. 보다 성숙한 인생을 위해 고요함을 유지하고 싶어졌다.
지역 내 잔도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미지에 세계를 발견한 듯 설레는 마음이었다. 주말이 오기를 기다리며 보내는 주간은 기분이 좋았다.
토요일 아침은 비가 올 듯이 흐린 날이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비가 오면 비를 맞겠다는 다짐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40여분을 조금 숨이 차는 강도로 오르다 보니 등산객을 위해 잘 정돈된 산길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따스한 배려는 기분 좋아지는 발걸음을 만들어 냈다.
능선을 걷듯이 걷는 하늘길에 다다르니 탁 트인 절경은 마음에 찌꺼기를 한 번에 날려 보내는 느낌이었다. 섬진강 줄기를 바라보며 평화롭게 걸으며 불쑥 이곳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궁금해졌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데크길이지만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경치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허공을 걷는 듯하다.
정상을 향하는 길은 가팔랐다. 헐떡이는 숨소리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
탁 트인 시야는 막혀 있는 마음을 열고 내려다보는 풍경은 가쁜 숨과 달리 평화롭다
정산을 넘자 봄기운을 이기고 녹지 않은 눈이 기다리고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3여 년 나서지 못했던 겨울산행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덕분에 몇 번 미끄러졌지만 가파름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동시대를 살아도 삶에 온도가 다르듯 정상과 지상의 온도는 현저하게 다른 온도와 풍경을 선보여줬다. 내 삶의 계절이 아직 겨울의 끝자락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봄을 재촉하지도 원망하지 않고 떠나는 겨울에게 "안녕 잘 가 고마웠어"라고 편안한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기 위해 오늘도 내자릴 그렇게 채워가며 지켜낸다. 쉽지 않은 내 삶을 사랑한다.
순창 용궐산 하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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