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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an 11. 2021

에세이 연습 (1) 아이스 아메리카노

왜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인가


글쓰기 연습이 필요해서, 에세이를 쓰기로 했습니다. 랜덤한 단어를 주제로 한 편씩 써가려고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1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말이 처음 생겼을 때 참 반가웠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된 건 4개월의 스페인 생활에서였다. 유럽은 커피를 차갑게 마시지 않는다. (않나 보다.) 대부분의 카페에는 ‘아이스’라는 선택지가 없었고, 편의점 얼음컵과 카누도 없었다. (이 두 가지는 얼마나 혁신적인 제품인가! 덕분에 한국에선 언제 어디서나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게 됐다.) 언젠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아 헤매다 ‘Cafe con hielo(커피와 얼음)’라는 메뉴를 발견한 적이 있다. 아, 이게 스페인어로 아이스 아메리카노구나, 라는 잘못된 생각은 메뉴를 눈으로 확인한 뒤 와장창 깨졌다. 커피 나왔습니다, 하고 받은 컵은 놀랍게도 뜨거웠고, 뚜껑을 열어보니 에스프레소 샷에 작은 얼음 한 개를 동동 띄워 놓았다. 채 미지근해지기도 전에 다 마셔버렸다.


그나마 스타벅스에서는 콜드브루를 팔았는데, (고통을 겪고 있는 나에게 많은 이들이 알려주었다.) 분명 차가운 커피임이 분명하지만 입맛에 잘 맞지 않았다. 특유의 들쩍지근함과 향이 있었다. 콜드브루가 아니라 머신에서 나온 에스프레소 샷을 찬 물과 얼음에 넣은 그 흔하디 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었다. 유럽 생활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밥도, 김치도, 아무것도 그립지 않았다. 얼음이 가득 든 커피를 그란데 사이즈로 시켰다. 한국의 소중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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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한 프랜차이즈 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때 깨달았다. 음료를 만드는 뒷 공간에는 거대한 얼음 제조기가 있었고, 얼음을 빨리 퍼낼 수 있도록 에스프레소 머신 옆에 있는 간이 얼음통에 얼음을 옮겨놓곤 했다. 얼음의 소진 속도는 어마 무시했다. 그 많던 얼음이 어느샌가 바닥을 드러낼 때면 경이로움을 느꼈다. 뚜껑을 열면 흉흉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제빙기가 하루 종일 얼음을 토해냈다. 그 카페 브랜드는 얼음이 특별히 작았는데, 덕분에 얼음이 덜 녹아서 커피가 덜 연해진다나 뭐라나. 어쨌든 진한 커피와 가득 찬 얼음을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투명한 컵에 얼음을 꽉꽉 채워 이것이 커피를 마시는 건지, 얼음을 마시는 건지 싶은 음료는 늘 날개 돋친 듯 잘 팔렸다.


아메리카노가 알바생이 가장 선호하는 메뉴라는 것은 요즘 흔히 알려진 사실이다. 간혹 소심한 성격의 사람들은 맨날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가장 싼 메뉴만 주문하는 것이 미안하거나, 민망하거나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알바생은 생각한다. 아메리카노 주문하는 손님이 최고다. 뜨겁거나, 차갑거나 상관없다. 특히 마감 직전에 ‘10분 뒤에 마감인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어봐도 아주 온화한 얼굴로 친절하게 괜찮다고 답하는 손님을 맞이할 때면, 그 알바생은 간절하게 속으로 아메리카노만 외치고 있을 것이다. 휘핑이 올라간 샷 추가 자바칩 푸라푸치노를 주문한다고 손님을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어쩔 수 없이 어깨춤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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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한국은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보다 겨울에 춥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얼음이 가득 든 커피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은 신기한 현상이다. 얼죽아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과한 일은 아니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데, 아무리 추운 날에도 롱패딩과 장갑을 껴입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기이하다. 속에 화가 많은가.


이쯤 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소울 푸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다. 좋게 말하면 소울 푸드, 또 한편으로 없으면 금단현상을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마약성 음료 같기도 하다. 한국인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란 대체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가. 이탈리아 사람들은 감옥에서도 최소한의 복지를 위해 모카 포트를 제공한다고 한다. 그곳에서 커피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우리에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당연히 얼음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언제 가장 많이 마시는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침, 점심, 저녁이다. 정확히는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고, 점심을 먹고 난 뒤에 없다면 오후 업무를 이어갈 수 없으며, 저녁엔 뭐, 그래도 아침과 점심보다는 덜 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저녁엔 술을 마신다. 맥주가 하루를 닫는 역할을 한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하루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 때문이라거나, 카페인 중독이라고들 하지만, 수고한 하루를 위해 맥주 한 잔 마시는 게 알코올 중독이라는 건 너무 심한 해석이듯이 아침에 아메리카노쯤 마신다고 중독이라 부르기는 좀 너무한 듯하다. 이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바쁜 ‘다이나믹 서울’에서 하나의 식문화로 인정받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먼 나라에서 한국에 대해 배울 때, 이 나라 사람들은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단다, 하고 배우며…….


여기까지 쓰니 커피를  마셔 글이 나오지 않는다. 알고 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붕붕  향기를 맡으면 힘이 나는 꼬마 자동차처럼 조금 색다른 료였나 보다. 생산성은 커피로부터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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