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책이 매력적인 관계인 이유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좋아하지만 그 특수한 장르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책을 읽는 것보다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이 재미있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영화를 요약한 영상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그러나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먹는 행위는 쉽고, 본능적이고, 누구나 즐기는 일이니까. 그러니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음식 못지않게 좋아한다. 음식에는 누구나 취향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영화 취향이나 음악 취향, 옷에 대한 취향은 왠지 지적이고, 감각도 타고나야 할 것 같고, 공부를 많이 해야 무언가 취향이라 말할 권한이 주어지는 것 같지만, 된밥이 좋은지 진밥이 좋은지에 대해선 누구나 답할 수 있다. 신라면이 좋은지 안성탕면이 좋은지(당연히 안성탕면이지), 갓 만든 김치가 좋은지 신김치가 좋은 지도. (물론 김치를 싫어할 수도 있다.)
요즘은 맥주에 관해서도 라거냐 에일이냐, 커피에 관해서도 산미가 있냐 없냐 등 취향이 세분화되는 모양이다. 취향은 무언가를 자주 접하면 탄생한다. 처음엔 그게 그거 같지만 여러 번 보고, 듣고, 먹다 보면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고(어떤 커피는 좀 더 가볍구나), 그중 한쪽을 더 선호하게 되며(난 묵직한 커피맛이 좋더라), 마침내 이름까지 붙여 말할 수 있게 된다(중후한 바디감의 과테말라 안티구아 주세요).
취향에 대한 판단은 그것을 접할 때마다 겪은 경험들을 비롯해 그 사람의 성격, 인간관계, 직업, 라이프스타일 등등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 취향을 물어보면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지기 마련이고, 취향을 알게 되면 생각보다 그 사람의 많은 면모를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자기 자신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확고한 취향으로 가득 찬 음식 에세이를 좋아한다.
세미콜론의 ‘띵’ 시리즈는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시리즈로 엮은 독특한 책이다. 조식, 해장음식, 치즈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작가들의 에세이가 지금까지 총 6권이 출간되었다. 내가 최근에 읽은 것은 이다혜 작가의 <조식 -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이다. (시리즈의 첫 책이다!) 오트밀과 시리얼, 엄마가 해준 밥, 호텔에서 해준 밥, 콩나물국밥 등 다양한 아침밥에 대해 다룬다.
한 편을 읽고 나면 그 사람의 윤곽이 드러난다. 띵 시리즈를 기획한 김지향 편집자는 민음사 tv의 인터뷰 영상에서 “한 권의 에세이를 읽고 나면 친구 한 명을 사귄 것 같은 느낌”이라고 이야기했다. 적극 동의한다. 더 나아가 너무나 매력적인 저자를 발견하면 현실 친구가 되고 싶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음식 취향이 그 사람을 대변해준다는 생각은 요즘 더 널리 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찍먹파와 부먹파로 나누고, 민트초코 호불호로 나누고, 음식 취향에 기반한 MBTI까지 만든다. 아주 사소한 입맛의 차이가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가장 핫한 연예인이 나오는 잡지 인터뷰에도 이런 내용으로 질문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누군가에 대해 더 알고 싶을 때, 민트초코를 좋아하는지 궁금해하는 심리는 대체 무엇일까. 내가 음식 에세이를 보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