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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사람의 생각 습관

뇌과학이 증명한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가장 빠른 길

by 하레온

잠든 채 살고 있습니까?


혹시 당신의 하루는 어떻습니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정해진 길을 따라 출근하고, 어제와 비슷한 점심을 먹고, 익숙한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입니다. 퇴근 후에는 지친 몸을 소파에 누이고, 추천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영상을 보다가 잠이 듭니다. 하루가, 일주일이, 그리고 일 년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분명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나름의 성취도 있고, 남들이 보기엔 번듯한 삶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득 공허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순간이 있지 않으신가요?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순간 말입니다. 마치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자동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착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잠든 채’ 살아갑니다. 여기서 잠들었다는 것은 의식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하고 자동적인 사고와 행동의 패턴에 갇혀,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감각과 선택의 가능성을 놓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깨어 있음’은 좌선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매 순간 내리는 ‘인식의 선택’입니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보고 있는 나’를 깨닫는 일입니다. 잠든 사람은 외부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먼저 ‘관찰’합니다. 이 작은 차이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거대한 전환점이 됩니다.


혹시 당신의 삶도 ‘자동항법 모드’는 아닌가요? 이 글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잠든 당신을 흔들어 깨우고, 삶의 운전대를 되찾는 여정으로 당신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1장 : 왜 우리는 잠들어 있는가? - 뇌과학이 말하는 자동항법장치

Image_fx - 2025-10-15T204542.302.jpg 왜 우리는 잠들어 있는가


우리가 왜 그토록 자주 무의식적인 상태에 빠지는 걸까요? 그것은 의지가 부족해서도, 게을러서도 아닙니다. 범인은 바로 우리 뇌 안에 있습니다. 뇌과학에서는 이를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고 부릅니다.


DMN은 우리가 특별한 과제에 집중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 혹은 상념에 빠져 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영역들입니다.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늘 효율성을 추구하죠. DMN은 바로 그 효율성의 산물입니다. 매번 새로운 상황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대신, 익숙한 상황에서는 미리 만들어둔 경로, 즉 습관과 루틴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DMN은 마치 자동차의 ‘크루즈 컨트롤’ 기능과 같습니다. 정해진 속도로 편안하게 고속도로를 달리게 해주지만,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이나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대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는 운전자가 직접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돌려야 하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DMN이라는 자동항법장치는 반복적인 일상을 처리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삶의 중요한 선택이나 예기치 않은 위기의 순간에는 우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언제든 이 자동 모드를 끄고 직접 핸들을 잡을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현대 사회는 이 DMN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를 유혹하는 스마트폰 알림, 끝없이 이어지는 업무, 예측 가능한 여가 생활은 우리 뇌가 굳이 새로운 생각을 하거나 어려운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점점 더 자극에 ‘반응’하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스마트폰이 울리면 보고, 배가 고프면 먹고, 화가 나면 소리치는 식입니다. 그 사이, ‘왜?’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삶의 주도권은 조용히 뇌의 관성에 넘어갑니다.


결국 우리는 ‘잘 사는 것 같지만’ 내면은 공허한, ‘성공한 좀비’의 삶을 살게 될 위험에 처합니다. 내가 무기력했던 이유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닌, 뇌의 보편적인 메커니즘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잠에서 깨어나는 첫걸음입니다.




2장 : 깨어 있는 사람들의 생각 습관 - 철학에서 배우는 관찰의 기술

Image_fx - 2025-10-15T204617.916.jpg 크고 평온한 눈이 자신의 앞에 떠 있는 작은 먹구름(생각)을 관찰하며 메타인지를 상징하는 미니멀한 삽화.


그렇다면 어떻게 뇌의 자동항법장치에서 벗어나 삶의 운전대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그 열쇠는 놀랍게도 동서양의 오랜 철학 속에 숨어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깨달음’의 본질은 복잡한 사유가 아니라, 바로 ‘관찰의 기술’에 있기 때문입니다.


잠든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분노라는 감정의 파도에 완전히 휩쓸려 버립니다. 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은 한 걸음 물러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 내 안에서 ‘화’라는 감정이 일어나고 있구나.” 그는 감정을 자신이 아닌,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손님’처럼 관찰합니다. 이 미세한 거리두기가 바로 ‘깨어 있음’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생각에 대한 생각’입니다. 자신의 인지 과정을 한 차원 높은 시점에서 바라보는 능력이지요. 예를 들어,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불안감이 밀려올 때, 잠들어 있는 사람은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지? 망치면 어떡하지?’라며 불안 자체에 매몰됩니다. 반면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은 ‘발표를 앞두고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라며 자신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려 합니다.


이러한 관찰의 기술은 결코 어려운 수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각을 멈추거나 없애려는 노력과 정반대입니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억지로 누르려 할수록 그것들은 더 강하게 우리를 지배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저 알아차리고, 이름 붙여주고, 조용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마치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듯, 내 안의 생각과 감정도 그저 왔다가 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무심(無心)’의 경지 또한 생각을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허용하되,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거나 끌려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깨어남’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그것을 특별한 경지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깨어남은 기술의 영역이며, 관찰하는 습관을 통해 누구나 훈련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입니다.




3장 : 일상에서 의식을 깨우는 도구들 - 수행이 아닌 기술

Image_fx - 2025-10-15T204645.259.jpg 두 손으로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을 소중히 들고 있는 모습을 위에서 바라본, 일상 속 마음챙김을 상징하는 삽화.


깨어 있는 삶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작은 습관들로 만들어집니다. 자동차의 핸들을 다시 잡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 의식적으로 자동항법 모드를 끄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수행이 아닌 ‘기술’로서 당신의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도구들입니다.


첫째, ‘의식적인 멈춤’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단 세 번, 알람을 맞춰놓고 무엇을 하고 있든 그 자리에서 1분만 멈춰보세요. 그리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겁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감각,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 주변의 소리들. 스마트폰을 확인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대신,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DMN의 지배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불쾌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뭉뚱그려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서운함, 억울함, 불안함, 질투심 등 다양한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아, 내가 지금 서운하구나”, “질투심이 느껴지네”라고 구체적으로 이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정과 자신을 분리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을 얻게 됩니다. 감정은 내가 아니라, 나를 찾아온 손님일 뿐입니다.


셋째, 일상의 무의식적 행동 하나를 ‘의식적’으로 바꿔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실 때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커피의 향, 컵의 온기, 입안에 퍼지는 맛에 온전히 집중해보는 겁니다. 양치질을 할 때 칫솔의 움직임과 치약의 향을 느껴보고, 샤워를 할 때 물줄기가 피부에 닿는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죠. 이런 작은 시도들이 습관의 사슬을 끊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우리의 일상은 ‘민수 씨’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민수 씨는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리자마자 인스타그램을 켭니다. 잠이 채 깨기도 전에 타인의 화려한 삶과 자극적인 뉴스에 뇌를 맡겨버리죠. 출근 전부터 이미 그는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반면, 깨어 있는 사람은 그 몇 분을 오롯이 자신의 호흡을 느끼는 데 씁니다. ‘오늘 내 몸의 컨디션은 어떻지?’라고 물으며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의 주도권을 잡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하루 전체, 나아가 인생 전체의 질을 결정합니다.




결론: 가장 위대한 질문, ‘나는 지금 깨어 있는가?’


우리는 잠들어 있는 이유를 뇌과학에서 찾았고, 깨어나는 방법을 철학에서 배웠으며,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기술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모든 여정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살면서 던지는 대부분의 질문은 ‘답’을 요구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은 우리를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계획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하지만 이 글의 마지막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이 질문은 단지 당신을 ‘현재’로 데려옵니다. 그것이 깨어 있음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 위대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깨어 있는가?”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모든 순간에 의식의 등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기쁨의 순간에는 그 기쁨을 온전히 느끼고, 슬픔의 순간에는 그 슬픔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자동항법장치가 이끄는 대로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매 순간의 갈림길에서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방향을 선택하는 주체적인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덮은 후, 부디 이 질문을 당신의 삶의 나침반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세상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자주 물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던지는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당신이 깨어나고 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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