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중고책방 열한 번째 손님께
안녕하세요, 준필 님. 이름없는 중고책방이 문을 닫았던 지도 어언 4개월이 흘렀습니다. 실은 조금 놀랐습니다. 책과 편지를 보내는 일을 멈춘 것이 훨씬 오래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1년 가까이 지났다고 생각하고 '큰일이네' 했었는데 고작 4개월이라니요. 저는 4개월 동안 1년 치를 늙은 기분입니다. 어떤 시간은 아주 더디게, 어떤 시간은 아주 빠르게 지나가요. 아마 행복한 때를 보내고 있을 때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겠지요? 그렇다면 저는 어떤 시간을 보냈던 걸까요.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1년 같은 4개월이었고, 행복한 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불행에 가까웠으나, 그렇다고 쉽게 불행했다고 말할 수는 없네요. 그 시간 안에서도 행복하기 위해 애썼던 제 노력은 빛났었으니까요. 그 찬란함까지 불행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으니까요. 매번 낯설고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고, 그걸 해결하거나 해치우거나 인내하며 4개월을 보냈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괴로웠던 시간이 고작 4개월이라니. 어찌 보면 축복일까요. 쓰디쓰지만 위로가 됩니다. 내가 느낀 것보다 훨씬 짧은 시간 동안만 힘들었을 뿐이라는 사실이요.
준필 님께 보내는 이 책은 3년 전에 출판된 책입니다. 코로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시대의 흐름인 '언컨택트'를 키워드로 잡아,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써 내려갔지요. 좋아 보이면 일단 사서 쌓아 두는 편이라, 이 책도 오랫동안 새 책으로 책장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준필 님을 만나서 마음을 다졌죠. 이걸 읽고 보내드려야겠구나. 이 참에 나도 이 책을 읽게 되겠구나. 그러는 사이에 별명이 '뭉치'인 책방지기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물컵을 넘어뜨립니다. 컵 안의 물이 책의 상반신을 적시게 되고, 오랫동안 흰 생머리였던 '언컨택트'는 굴곡진 사연과 구불거리는 웨이브를 갖게 됩니다(죄송합니다). 뭉치는 역시나 '사고뭉치'에서 유래된 별명입니다.
실은 이 '이름없는 중고책방'이야말로 언컨택트의 본질을 꿰뚫는 공간이 아닐까요? 준필 님과 저는 단 한 번도 대면한 적 없으면서 거래를 하고, 이렇게 마음까지 나누고 있으니까요. '이름없는 중고책방'은 당근마켓에서 시작한 대면 거래였으나, 한 번의 거래 이후 모두가 비대면 거래로 이루어졌습니다. 겉만 보면 기계적이고 쓸쓸하기 이를 데 없는 시스템이죠. 계좌이체로 거래를 하면 책방지기가 혼자 책을 읽습니다. 네모난 노트북을 켜 키보드를 두들겨 써낸 편지를 인쇄합니다. 편의점에 가 기계로 택배를 접수합니다. 찌지지직- 운송장이 인쇄되면 정해진 장소에 택배를 두고 자리를 뜹니다. 책과 편지의 행방은 운송장 번호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보고됩니다.
그러나 저는 책을 고르고 읽는 모든 순간 손님을 생각합니다. 편지를 쓸 때는 더더욱 그렇죠. '이곳의 날씨를 전할까' 하면서 자연히 '그쪽의 날씨는 어떨까' 생각합니다. 내가 고른 책과 편지가 손님의 마음에 작은 기쁨을 더해주길 기대하면서 모든 과정을 수행합니다. 언컨택트는 서로 단절되어 고립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연결되기 위해서 선택된 트렌드라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음이 만들어냈다고는 하지만, 정말 안심이 되는 멋진 트렌드이지 않나요? 어쨌든 우리가 바라는 것이 연결이고, 우리 곁에는 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요.
책과 편지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누군가 읽어줄 때에 비로소 의미가 생겨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저의 책방을 찾아주셔서, 다정하게 문을 두드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시간 책과 편지를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딸랑' 책방 문 위에 달아둔 종이 싱그럽게 울렸거든요. 그게 아주 짧은 시간이더라도, 그 일의 끝에 값진 깨달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준필 님이 굳이 힘들고 아픈 시간을 겪지는 않으시길 바랍니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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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인지 가을이 몹시 기다려지는 마음으로,
책방지기의 진심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