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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pr 05. 2023

떠나는 이야기 #6

전원

전원한 곳은 광진구에 있는 중급병원으로, 규모가 작은 만큼 이전 병원보다 의료진과 기타 직원들의 친절함이 안도감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입원실이 늘 만실이었던 이전과 달리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경우도 많아 상대적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다니던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고 전원한다는 사실 자체를 사형 선고라도 받은 양 속상해하던 엄마도 같은 이유로 조금은 심적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다신 입을 못 떼실 것처럼 보였던 아빠는 병원을 옮기자마자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고, 담당의사는 아직 젊으시니 - 아빠는 65세였습니다 - 너무 절망만 하진 마시라며 근 두 달 만에 처음으로 희망적인 멘트를 해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잘못될 것처럼 벌벌 떨다가 생이 연장된 듯한 기분이 드니 어찌나 마음이 들뜨던지요. 엄마는 담당의 인상부터 너무 좋았다며, 그날 다시 입원하기로 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좋아했습니다. 여전히 약물의 부작용으로 간간이 섬망증상이 일어날 때엔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낮에는 대개 대화가 가능했고 면회를 온 남편은 장인어른이 다시 괜찮아지실 것 같다며 웃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얻은 시간에 불안해하고 또 행복해하며 보낸 것이 열흘이었는지, 두 주였는지, 그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고, 담당의는 칼륨 수치가 잡히지 않는다며 혹여나 필요한 상황이 오는 경우 기도삽관을 통한 연명치료를 하기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아빠가 의식 없이 고통만 받는 것은 싫다고, 살아있는 채로 사시는 것이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이 정도로 급격히 나빠지실 줄은 몰랐습니다. 몇 달은 더 버티실 줄 알았는데...'

'지금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예상이 어렵습니다'

'그럼 위독하시다는 느낌이 오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해주시나요?'

'아직 그런 말씀하실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단계가 오면, 미리 알려 주실 거지요? 정확하지 않더라도요'

'예상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네. 그냥 선생님 보시기에 더 나빠졌다 싶을 때 바로 말해주실 수 있나요? 안심하고 있기 싫어서 그럽니다'

'그래요. 그래보겠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무의미한 부탁이었습니다. 굳이 의사의 소견이 없더라도 곁에서 보기만 해도 상황의 다름을 알 수 있었거든요. 그날부터 시간 단위로 상태가 나빠졌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나날이 지속되었습니다. 하루만 병실에 들르지 않아도 딴 사람처럼 몸이 마르고 얼굴색이 죽어 있어, 커튼을 젖힐 때마다 심호흡을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빠 얼굴을 보고도 놀라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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