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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pr 05. 2023

떠나는 이야기 #7

안녕 아빠

아빠는 산소호흡기를 달았습니다. 얼굴은 물론 눈동자까지 흐린 황색으로 변했고,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호흡기를 단 채 쉬는 호흡은 온몸이 떨릴 만큼 불안정했습니다.


며칠째 한 순간도 병실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엄마를 위해 사온 샌드위치를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맥박을 재려고 묶어둔 압박밴드를 풀어도 다시 팽팽해지지 않은 채 눌려 있는 아빠의 발목을 보며 알았습니다.


이제 하루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요.


병실 안의 공기는 환기를 아무리 해도 눅눅했습니다. 삼복더위에 문을 계속 열어둘 수 없는 탓도 있었지만 결국 에어컨도, 바깥공기도 죽음의 냄새를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엄마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계신 듯 차분한 목소리로 뭐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라고 하셨어요.

어디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은 청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소호흡기를 지탱해 주고 있는 고무줄이 귀를 너무 꽉 누르고 있는 것 같아 거즈를 가져다 피부 사이에 대 드리고, 퀴퀴한 냄새에 본인도 고통스러우실지 몰라 흐릿하게 향수도 한 번 뿌렸습니다.

들릴지 모르는 귓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속삭였습니다.




아빠.

우리 그동안 정말 좋았죠. 우리들 어린 시절 일하시면서 자식들 챙기고 온갖 곳을 여행 다니며 챙기시기 얼마나 힘드셨어요. 사업이 안 돼서 어려운 시간도 많았지만 다가족들 책임지려고 애쓰신 거였잖아요.


제가 모시고 간 여행들도 기억나죠? 일본에서 벚꽃도 보고 온천도 하고. 음식 맛있다고 너무 좋아하셨잖아요. 하와이에서 본 바다는 어떻고요. 발리에 가서 원숭이들 보고 놀란 거 하며, 우리 여유롭게 조식 먹으면서 보냈던 거,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정말 많았잖아요.


그러니까 일생을 정말 잘 사신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잘 지내온 것, 우리가 이만큼 자기 앞가림하며 살아가는 것 전부 아빠 덕이예요. 고마워요. 우리가 있으니 엄마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고요. 아빠 덕분에 남아있는 사람 누구도 힘들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걱정은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즐거웠던 것만 생각하고 쉬세요.

함께해서 좋았어요, 아빠.

사랑해요.


실제로 이렇게까지 유려하게 모든 문장을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제 목소리를 듣던 중 엄마가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고, 저도 점점 목이 메어왔던지라 단어들이 나오지 못하고 자꾸만 혀끝에서 멈춰 버렸거든요.


그때 제 이야기를 듣던 감은 아빠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

오늘은 눈물이 나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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