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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pr 06. 2023

비와 당신 #1

떠남

저녁을 먹으러 남편과 자리를 뜬 사이 엄마 홀로 지킨 병실에서 아빠는 영원히 잠들었고, 부리나케 되뛰어온 우리 앞에는 흰 천을 덮어쓴 몸이 누워 있었습니다.


직원은 가시는 길에 얼굴을 다시 보여드릴지 물었는데, 걷어낸 아빠의 얼굴은 한쪽 눈을 뜨고 있었죠.


'아이고, 보고 싶으셨나 봐요, 아직 이렇게 감지 못하시고....'


그가 조금 당황한 듯 작게 웃으며 조심스레 눈을 감겨 드리자 얼굴이 조금 편안해 보였습니다. 엄마는 흰 천에 싸인 아빠의 양 발을 끌어안은 채 오열하고 있었고, 저 또한 수년만에 아빠 품에 안겨 조금 울었습니다.


네, 조금밖에 울 수가 없었어요.


가족을 떠나보내 본 사람이라면 슬퍼하는 것 말고도 얼마나 처리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은지 알 겁니다. 그날 밤부터 삼우제를 지내던 날까지 정말 한 순간도 쉴 수가 없었거든요. 흔히 인륜지대사라고 하면 결혼식, 장례식을 떠올리는데 미리 시간을 두고 여러 업체를 비교하며 적정 예산과 취향을 두고 의사결정을 해 나가는 경사와는 달리 장례는 그렇게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유족은 판단능력이 흐트러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 그 와중에 장례를 치르는 시일은 정해져 있고, 당연히도 그 날짜 자체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다 보니 - 고민할 시간은 없는데 폭풍처럼 몰아치는 결정사항에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보통의 경우 결혼식은 주변인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대충이라도 식장은 어디 어디를 많이 하나보다, 어디 드레스가 예쁘더라, 어디로 신행을 가고 싶다 하는 나름의 기준이나 선호가 쌓여있을 수 있지만, 장례식에 대해서는 그런 게 없기 마련입니다. 평소 가족의 장례를 치를 병원이나 사용할 조화의 형태라던가 납골함을 무슨 재질로 할지 고민해 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희는 그랬습니다. 가족 선산이라도 있다면 최소한 모실 곳이라도 정해져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없었던지라 말 그대로 준비해 둔 것이 제로였던 것입니다.


하여 정신없이 상조업체를 알아보고, 고군분투 끝에 다니시던 병원에 딱 한 자리가 난 장례식장을 예약하고, 모실 납골당을 계약하고, 꽃을 사고, 영정사진을 만들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고 돌아가신 분의 삶이 숫자들로 나열되던 화면은 잠잠하고 무상했습니다.


그렇게 사흘간 장례를 치르며 생각보다 정말 많은 조문객이 와 주셨습니다. 회사 동료들도 끊임없이 찾아와 엉덩이 붙이고 앉을 틈이 없이 새로운 손님을 맞이해야 했고, 인간관계가 엄청나게 넓은 남편의 직업적 특성 덕분에 감사하게도 조화가 복도를 가득 채워 병원 직원분이 오셔서 정리를 도와주실 지경이었습니다.

고상하게도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저는 그저 꽃밭에 누운 아빠에게 처음으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는 그렇게 입원일자를 알리던 오월 어느 날로부터 60일 만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떠나던 마지막 날엔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져 운구차가 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 싶은 걱정까지 들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날이 화창했으면 더 슬펐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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