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R Apr 07. 2023

비와 당신 #2

입관

장례식 내내 저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달려와 준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은 생각보다 너무 차분해서 놀랐다, 네가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눈물이 날 것 같아 각오하고 왔는데 전혀 아버지 보내드리는 사람 같지가 않다, 지금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있다가 나중에 갑자기 빵 하고 터져버릴 것 같아 걱정이다 등등, 다양한 반응을 겪으며 저는 불현듯 지금은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대학교 시절 도 모르고 참석했던 학교 선배의 부친상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선배는 그때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병상에 오래 계셨던 아버지를 보내드린 참이었고, 제 기억에 제가 갔던 첫 번째 직계부모 상이었습니다. 아직 제 또래가 흔히 겪을 일은 아니었지요. 저 또한 당시 아빠가 처음 암 진단을 받기 전이었고, 부모를 잃는다는 것은 막연히 제가 중년은 된 이후에나 겪는 일인 줄로 알고 살았습니다.

상복을 입은 모습이 처연하니 낯설었던 것은 둘째 치고,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보다도 조용했던 선배의 모습입니다.

서툴기 그지없게 어떡해요 언니,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며 당사자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던 제게 선배는 담담하게 대답했었습니다.


괜찮아. 오래 아프셨어.




슬픔이나 고통을 견디는 방식은 제각각입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저는 아빠를 보내고 한동안 생활 곳곳에서 체감하게 됩니다만, 그땐 차분한 선배의 모습이 경이로워 보일 따름이었습니다. 이미 투병생활 내내 너무 지쳐서 눈물이 안 나오는 걸까? 장례식장에 오기 전에 너무 울어서 잠시 못 우는 걸까? 후배라고 해도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닌데 그 앞에서 울기가 창피했던 걸까?


아직도 답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그게 별로 신기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저 또한 동기들이 왜 이렇게 멀쩡해? 라고 물을 정도였습니다만, 진짜 멀쩡해서 멀쩡한 것은 아니었고요. 그저 울 정신이 없었을 뿐입니다. 울기엔 너무 할 일이 많았고, 결정할 일이 끝이 없었고, 무엇보다 겨우겨우 정신을 잃지 않는 것으로 힘을 다 소진한 엄마를 살펴야 했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딱 한 번 눈물을 흘렸네요.


그건 아빠의 입관 때였습니다.


생각보다 장례식장 안에서는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 한 - 고인에 대해 계속 떠올리게 되지 않았습니다. 바빴거든요. 잠시라도 소위 '멍을 때릴' 틈이 생기면 음식이 무엇 무엇이 바닥났는데 오늘 얼마나 더 주문할지 정해야 했고, 상조회사 담당자가 찾아와 납골함을 고르라 했고, 방명록과 봉투를 정리해야 했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잠깐, 너 친구라는 분이 찾아왔는데 인사 좀 드려라 하고 불려 가기 일쑤였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하지만 고인을 모신 곳은 장례식장이 아니라 안치실이죠.

입관을 하러 가족 친지들이 함께 걸어 내려가며 심장이 점점 조여 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살아 계신 아빠를 본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가 지금부터 볼 광경을 버틸 수 있을까?

손가락 끝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양손을 마주잡은 채 입관실에 들어갔습니다.


 이틀만에 본 아빠는 미색 수의에 싸인 채 조각상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가족들의 눈물이 터졌고 저는 그때까지도 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든 생각은 아, 우리 아빠 잘생겼다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원래도 덩치가 좋고 눈과 코가 큰 아빠는, 어려서 아파트 맞은편 집에 살던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남편분이 혹시 형사에요?'  라고 물을 정도로 부리부리한 인상이었습니다. 혹독했던 투병으로 살이 다 빠져버렸지만 골격은 살아 있어서 평소보다 코가 더 높아 보였습니다. 시커매졌던 안색도 옅게 화장을 해 주셨는지 너무나 깨끗해 보여서 두 달만에 처음으로 표정까지 편안해 보였죠.


마지막 두 달간 얼마나 고통받으셨는지 아는 저로서는 그저 그 지옥 같은 병에, 아픈 몸에 더 이상 갇혀있지 않고 아빠가 자유로워졌다는 사실 하나만이 장례식을 버티는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본 모습이 너무나 멋지고 금방이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처럼 멀쩡해 보여서 정말이지 한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남은 일생을 두번다시 보지 못하고 살아낼 수 있긴 있는 걸까요?


결국 입관식 내내 울며, 참을 수 없이 흐느끼며, 마지막 가는 길의 관 위에 작별 인사를 적어야만 했습니다.

이전 09화 비와 당신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