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R Apr 12. 2023

비와 당신 #3

장례

아빠를 모실 곳은 파주였습니다. 특별히 파주에 연고가 있는 것도, 집에서 가까운 것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그쪽으로 모셨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쭉 찌푸렸던 하늘과, 사흘 밤을 거의 자지 못했는데도 졸리지 않았던 멍한 정신, 그리고 어쩐지 일상으로 돌아가기 두려운 마음이었어요.


끝이 다가올수록 저는 괜스레 말이 많아졌고, 남편에게 농담을 했고, 엄마에게 이런저런 쓸데없는 얘기를 떠들었습니다. 그냥 멍하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딴청을 피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 이후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걸요.


화장을 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거의 1시간이 걸려요. 물론 일생을 살아온 마지막 흔적을 보내는 데에 그 정도 시간이 길다고는 할 수 없는데요, 멍하니 기다리다 놀랍게도, 고운 가루가 되기 전에 화장이 얼추 다 된 상태의 시신을 꺼내어 파쇄하는데 - 그래도 유골의 형태가 조금 남아 있습니다 - 유가족이 그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때 충격을 받고 '뭐 저런 걸 다 보여줘' 라며 울먹이셨는데, 일반적인 절차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그때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냥 현실감이 떨어져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제 뇌가 나서서 모든 감정이 잠잠하도록 진두지휘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은 아니라고. 일이 끝날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고.

울 시간은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있으니 지금은 할 일을 해내자고.




납골당에 모시는 과정에서는 위치와 가격을 흥정하면서 (장례의 과정은 결혼식만큼이나 자본주의적인데, 차이점이라면 도대체가 고민을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족들끼리 잠시나마 언성을 높였고, 마지막에는 그만 남편과도 투닥거리고 말았습니다. 일생에 한 번 겪는 비극 중에 있는 내게 감히 이 정도 인내심밖에 보이지 않다니! 하는 괘씸한 마음이 들다가도 또 나름대로 처갓댁 행사에서 나흘 내내 혹사당한 걸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리저리 부딪히면서도 신기하게 시간은 지나갔고 모든 일은 적당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엄마를 혼자 둘 수는 없었으므로 제가 친정에 잠시 머무르기로 했어요.


아빠를 잃은 엄마는 더는 '너희 힘든데 집에서 쉬어라'라든가, '새색시가 집 비우는 거 아니야' 라며 우리 가정을 먼저 걱정하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많은 것을 잃었고 그중에는 미처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러나 아주 중요한 것들이 잔뜩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내가 필요하다고 할 때만 와주면 돼, 하고 당당하게 대답하던 엄마는 더는 없었고 한 순간도 혼자서는 잠들지 못하는 초로의  홀어머니만 남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대충 짐을 챙겨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습니다.

아빠와 이별하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요.




이전 10화 비와 당신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