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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Sep 04. 2024

날카롭게, 때론 멀리 보기(3)

김훈의 허송세월 3(83~123쪽)

거리에 붙은 정당 현수막을 볼 때마다 눈을 감고 싶다. 악의를 담은 사나운 말들이 눈을 찌른다. 말은 말을 지나 칼이 되고, 칼은 벼려져 숨을 끊는다.      


가슴에 핏물이 선연한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슬픔이 슬픔으로, 아픔이 아픔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슬픔을 조소하고, 아픔 위에 돌을 얹는다. 더 이상 누구의 죽음에도 통증이 없다.      


"한국의 근대사는 가야 할 길이 멀고 발걸음이 다급했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초개로 여기는 사회 풍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p117)"     


식민 지배와 전쟁과 폐허 위에서 목숨은 도로와 건물과 물품으로 맞바꿈 되었다. 폐허 위에 살이 오르고, 길이 열리고, 열매가 돋아도, 그것들과 맞바꿈 되는 목숨은 왜 그대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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