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_ 상실하다

『축복받은 집』 중, <일시적인 문제>

by 장소록
슈쿠마는 한때 자신을 압도했던 그녀의 아름다움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p33)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마음산책


여자는 아이를 사산했다. 남편은 멀리 있었다. 남편에게 학술 대회 참석을 강권한 건 그녀였다. 만약 남편이 학회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녀의 곁에 있었더라면…. 깊은 상처 앞에 '만약'이라는 가정의 질문들이 수없이 떠올랐을 것이다. 자신이 권유했던 출장이기에 온전히 원망을 쏟아낼 수 없는 그녀와,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나 결국 출장을 가기로 결정한 그의 죄책감은 그들의 관계를 망가뜨렸다.


'단전'을 예고하는 안내문이 붙는다. 단전은 그들에게 관계 회복의 기회가 되는 듯했지만, 독자의 긍정적 기대가 온전히 충족되지는 않는다. 닷새 동안 한 시간씩 단전을 예고한 전선 보수작업은 예상보다 일찍 끝난다. 나흘 만에 밝은 빛 아래 마주 앉은 그들은 다시 어색한 관계로 복귀한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지낼 아파트를 구했다고 말한다.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상처는 쉽게 복구되지 않았다. 단전은 일시적인 문제였기에 쉽게 복구 가능했고 예정된 시간보다 더 일찍 복구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문제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었기에 나흘 간의 네 시간으로는 극복될 수 없었다. '일시적인 문제'라는 반어적 제목 탓에 기대했던 예상을 벗어남으로써 오히려 다양한 생각의 변주를 가능하게 한 뛰어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은 이제 자신들이 알게 된 사실 때문에 함께 울었다.(p45)


어둠 속의 첫날 그들이 나눴던 이야기 - 그의 주소록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있는지를 몰래 확인하고, 비록 주소록에 자신의 이름은 없었지만 그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때의 그녀. 그녀와의 결혼을 예감하며 산만해져 웨이터에게 팁 주는 것조차 깜박 잊었던 그때의 그. 서로에 대한 애정을 상실한 두 사람이, 관계가 시작되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은 쓸쓸하다. 그리고 이제는 상처를 다시 불러내는 사건을 고백하며 깨진 관계 앞에 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서로의 관계에 대한 사랑을 상실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기에 복구될 수 없고, 복구될 수 없는 찢어진 관계가 그들 앞에 놓인 '사실'이기에 그들은 운다.


인도 출신 미국인이라는 정체성, 영토 분할과 관련한 전쟁의 역사를 안고 있는 고국. 저자의 냉철하고 웅숭깊은 문장과 사유는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자신의 소설사를 이민사로 보는 것에 저항했던 저자지만 작가의 삶과 배경을 온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소설의 영역이라 생각된다. 많지 않은 작품으로도 미국 소설의 역사에 족적을 새기며 인기 스타로 군림하게 된 저력은 그녀의 태생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을 듯하다.


*두 사람이 함께 우는 마지막 장면을 갈등 해소로 해석하는 분들도 많더군요. 저는 복구될 수 없는 간극과 그 사실을 떠올리는 슬픔으로 이해했습니다. 한 번 비켜선 인간관계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