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 전에…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by 장소록
"설교하는 대신 귀를 더 많이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할 말이 없을 때 내 생각과 말로 빈 공간을 채우는 대신 말없이 같이 앉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p419)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 반비


아이는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작은 장난감을 손에 쥔 채 입을 약간 벌린 아이의 천진한 모습을, 아이의 엄마는 잔잔한 웃음을 띈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따뜻한 느낌의 평범한 사진 한 장으로 된 표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평범한 삶을 따뜻하게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일인지를 새삼 절절히 깨닫게 된 까닭이다.


1999년 4월 20일,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가학성으로 물든 극단적 자기중심성, 무작위적인 공격, 사전 계획의 거창한 규모'등으로,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사건은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수 클리볼드, 이 책의 저자인 그녀는 에릭 해리스와 함께 이 총격사건을 일으킨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다. 그녀는 살인자의 어머니라는 낙인을 제외한 모든 정체성을 상실한 채, 바닥을 알 수 없는 지옥에 떨어져 안락과 영영 이별한 그녀 삶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1부. 상상도 하지 못한 일


딜런은 미국의 포크송 대부인 밥 딜런이 예명을 따왔을 정도로 미국에서 인기 있는 웨일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딜런 토마스의 이름을 땄다. 음주, 기행, 충격적 이미지 등을 대표하는 시인의 이름에서 이미 평이하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딜런은 가족에게 '햇살'이라 불리던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쾌활하고 다정했으며 차분하고 분별 있는 아이로 자랐다. 사건 몇 주 전에는 곧 입학할 애리조나대학교를 둘러보러 갔었고, 사건 사흘 전에는 고등학교 졸업 파티인 프롬에 턱시도를 차려입고 파트너와 함께 참석했다.


'딜런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낌새는 있었다. 그걸 놓친 건 내 책임이다.' 수 클리볼드는 이렇게 인정했지만, '그러나 그 징후는 대단히 미약했으며 요란한 경적 소리나 번쩍이는 네온사인 경고등 같은 것은 없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 극악무도한 참극의 배후에 있는 불편한 진실은, '좋은 가정'에서 걱정 없이 자란 수줍음 많고 호감 가는 젊은이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딜런은 전형적인 착한 아이였고, 키우기도 쉬웠으며, 함께 있으면 즐거웠고 언제나 대견한 아들이었다고, 수는 말한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이 하나의 질문에 딜런의 부모도, 온 세계도 매달렸지만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을 줄 순 없었다. 다만, 우리가 깨달은 진실 하나는 아이가 아무리 절망적 상태에 빠져 있더라도 그걸 드러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부모, 교사, 친구들조차 모를 수 있다는 사실뿐이다.



2부. 이해를 향해


딜런은 우울 증세와 자살 욕망이 있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병의 증상이고 뇌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커다란 문제가 몸을 감춘채 딜런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는, 딜런이 우울의 징후를 보였으나 남편과 자신이 보고도 해석을 하지 못했고, 만약 이 징후들의 의미를 알았더라면 콜럼바인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 공황발작 등의 증세를 경험하며 뇌의 건강 문제는 반드시 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질병임을 깨닫는다. 수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은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해야 할 일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가 아는 아이를 기르기 위해 내가 아는 최선의 방식으로 길렀고, 내가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 아이를 기르는 최선의 방식은 알지 못했다." (p424)


'슬픔에도 수명이 있다.' 사건 이후 수는 유방암 발병과 공황발작 등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어내며 딜런 없이 사는 법을, 딜런이 저지른 일을 알고도 사는 법을 배워나갔다. 자살 예방과 유족 모임에 몰두했고, 청소년의 뇌, 자살, 폭력 관련 연구를 파고들었다. 일부는 속죄 의식으로, 또 일부는 자기 보호의 행위로써. 하지만 이 모든 일의 근저에는 그저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어떻게 딜런이, 그녀가 최선을 다해 키워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깊은 물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내 아들이 내가 생각한 아이가 아니었다는 증거들 앞에서, 산 채로 살갗을 뜯어낸 것 같은 보호막이 없는 극단적 슬픔 상태에서, 그래도 그녀는 사람에게서 위안을 느낀다고. 주변 사람들의 돌봄 덕에 끔찍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노라고. 날마다 전화하고 안아주는 가족과 친구들, 음식을 만들어 가져다준 이웃들, 기자나 낯선 이들로부터 보호해주려 애쓴 주변 사람들까지. '신이 정말로 지상의 우리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타인의 행동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고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슬프고도 무서운 진실은, 이런 문제를 어느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가족 중의 누군가에게, 내 친구 중의 누군가에게, 내 이웃 중의 누군가에게 묻고 달래고 구슬리고 매달려야 한다.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줘. 기분이 어떤지 말해줘. 뭐가 필요한지 말해줘.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말해줘.'라고.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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