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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Oct 22. 2024

우리 대부분은 충분히 정상이다

앨런 프랜시스『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개인마다 갖가지 정신 질환을 품고 있고 그런 개인들이 모여서 병든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 이것은 지나치게 야심찬 정신 의학과 지나치게 탐욕스러운 제약 산업이 지어낸 신화일 뿐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충분히 정상이고, 계속 정상으로 머물고 싶다.(p408)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앨런 프랜시스 , 사인언스북스


인간의 삶의 질을 규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금전적인 부분이지만 실제적인 일 순위는 건강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충분한 금전적 뒷받침이 있더라도 자신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만족한 삶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육체적 건강 상태와 더불어 정신적 건강의 문제까지 예민하게 살필 수밖에 없다.    

  

앨런 프랜시스의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은 정신 의학자의 입장에서 본 현대 정신병 산업에 대한 깊은 우려와 경고를 담고 있다. 앨런 프랜시스가 진단한 현대 정신의학 분야의 큰 문제점은 정신장애에 노출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감내하던 다양한 정신적 불편함과 고통들을 약을 통해 극복해야 하는 질병으로 규정함으로써 현대인의 대부분을 정신 질환자의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다. 진단 과열 현상과 진단 인플레이션으로 환자를 대량생산하고 있으며, 의료적 처치 없이도 자기 치유가 가능한 문제를 질병으로 확정 짓고 치료와 투약을 권유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의약품 과다 복용의 문제를 일으키고, 불법 마약보다 합법적인 처방약이 더 큰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앨런 프랜시스의 진단대로 사실 이전 세대에게는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연적으로 극복해야 할 사소한 문제들로 여겨지던 정신적인 문제들이 낯선 의학용어를 달고 우리 앞에 전시되는 경향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정신의학 분야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하고 그 경계선을 긋는 행위 또한 임의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가장 큰 요인은 제약회사들의 탐욕이다. 그들은 더 큰 이윤을 남기기 위해 환자를 만들어내야 하고 정신병의 영역을 더욱더 확장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정책 입안자, 의사, 교사 등의 책임 있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이런 제약회사들의 상술과 로비에 넘어가고 개인들이 휩쓸리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을 뼈아프게 직시한 앨런 프랜시스의 주장을 들으며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 특히 과도한 정신질환 진단과 약물의 남용이 어린이들에게로 영역을 넓혀가는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심각하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교육 및 공공 캠페인이다. 현재 의료 분야의 문제점을 개인들이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와 어린이들로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약물 남용의 폐해를 알리고 인간의 자연치유 능력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어느 정도의 시간 속에서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정도의 정신적 문제는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도록. 우리나라처럼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투자와 부모의 과도한 관심이 만연한 곳에서는 특히 이런 교육의 중요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린이 38명 중 한 명꼴로 자폐증 진단율이 뛰었다고 한다. 제약회사의 다각도의 로비가 횡행하는 미국의 어린이 자폐증 진단이 80명 중 한 명 꼴인 걸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과도한 진단 수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한 여러 폐해들을 정확히 알고 지속적으로 항의하고 반대 의사를 천명할 사람들이 필요하며 그들은 보통의 평범한 개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평범한 개인들이 깨우치고 연대할 때 세상의 흐름이 바뀌고 그 변화로 인해 법률이 세부적으로 제정되며 그로부터 구체적인 변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 시작점은 어린이의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앎이 새로운 변혁의 시작이며, 잘못을 바로잡는 가장 날카로운 도구이다.      


다음으로, 정신병 진단 과정의 단계화가 필요하다. 의사들은 극히 짧은 시간 환자를 대면하고 즉시 정신과 약을 처방한다. 잠깐 동안의 대면만으로 진단한 결과는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진다. 정신과 약을 처방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의 유예 기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치료법을 적용하고 면담을 실시하며 그 의무 유예 기간을 모두 거친 후에라야 정신과 약을 처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심각한 상태의 중증 환자는 즉각적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선 환자들에게는 단계적 진단 과정을 엄격하게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일시적인 정신과 징후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늘 바쁘고, 불안하고 외롭다. 심리적 증세를 감당할 시간과 정신적 타격을 완화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사람들은 한 알의 약으로 간단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무능력으로 좌절하거나 일을 망쳤을 때 무능력의 원인으로 질병을 지목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 우리는 약물에 의존하려는 심리가 발현할 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세심하고 지속적인 자기 관찰의 필요성과 자가 진단의 쓸모를 앨런 프랜시스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든 또 하나의 생각은 오늘날 의료분야가 돈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환자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전문가나 기관이 희귀하다는 것이다. 결국 각자도생의 판이 되어버렸다는 것인데, 앨런 프랜시스가 제시한 대안의 대부분도 개인의 의지에 기대는 내용이 많다.  '정상'을 구해낼 수 있는 체계적인 항목을 갖춘 단계적 매뉴얼이 양심적인 전문가의 손에서 탄생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허위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끝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방법밖에 없다는 오롯한 진실을 깨닫는다.


(*표지 이미지는 알라딘 인터넷서점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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