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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Oct 21. 2024

고독한 노동과 커뮤니티와 이야기의 세상

김동식 『회색 인간』

"넌 살아남아.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꼭 살아남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줘.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p19)


『회색 인간』, 김동식 , 요다


그의 책을 접하며 과연 학교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학교 교육이 모든 사람에게 의무가 될 필요가 있을까. 김동식 작가는 야단맞을 일밖에는 없는 학교가 싫어 중1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학생으로, 학부모로 근접 거리에서 학교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쩌면 어른이 된 우리가 개혁하지 않은 채 놓아둔 학교가 오늘도 또 다른 김동식을 학교 밖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회색인간>을 제목으로 정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기계 같은 삶을 견디게 해주는 힘은 음악이고 문학이고 그런 거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그러하다'라고 답을 주는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이야기를 써냄으로써, 그런 행위들을 용납하고 인정함으로써 사람들은 회색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글쓰기에 대해 ‘삶을 견디게 하는 소박한 위안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김동식 작가. 그의 말은 듣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찬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회색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까지 없던 이야기, 이제까지 없었던 이력의 작가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작가란 원래 규정된 틀을 벗어나려는 사람. 없던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그는 이 시대의 최전선에 서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평단의 평가에도, 신춘문예의 틀에도 갇히지 않은, 그리고 대중의 ‘참견’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 그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쓸 때 개연성이나 맞춤법 지적을 수용하고 고치며 더 나은 작품을 쓰는 사람으로 진화한 것처럼 모든 작가는 대중의 눈을 통해 성장할 필요가 있다. 대중이 돌아보지 않는 문학과 예술이, 대중이 펼쳐들지 않는 책이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문학비평 공간을 소수가 독점하는 시스템이, 그리고 그 시스템 내에 안주하는 작가들이 사람들을 책으로부터 몰아내왔던 건 아닌지.       


김동식 작가는 포털에서 이슈가 되는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눈여겨본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비현실적인 설정임에도 어딘지 익숙하고 진실과 맞닿은 듯 날카로운 실재감을 느끼게 한다. 조용히 세상을 응시하는 자의 힘이 실린 이야기들이다.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 추진과 비선 실세의 이야기(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 선한 이들의 말이 언론, 대중, 권력자들에 의해 조롱당하고 묵살당하는 현실(낮인간, 밤인간)/ 인류의 욕심으로 결국 예상 못한 재앙을 맞게 되는 이야기(신의 소원, 흐르는 물이 되어)/ 노예가 된 듯 집중했다가 쉽게 잊는 사람들(444번 채널의 동굴인들) /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아닐 수 있다는, 우주적 시야를 담은 이야기(어린 왕자의 별) 등. 기발한 상상력과 반전, 그 반전이 던지는 충격과 허무 그리고 생각보다 세상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며 가능한 일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까지. 다양한 그의 글들은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지금 나의 행동을 점검하게 한다. 재미 삼아 읽고 쉽게 잊는, 지나치게 가벼운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 책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정작 무서운 것은 괴물이나 요괴가 아니라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남한테 상처 주는 사람, 개인의 작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 피해는 신경 안 쓰는 사람, 자신이 받은 엄청 작은 피해에도 격분하고 못 견디는 사람들이 무섭죠.' (김동식)     


그의 말처럼 사람이 무섭다. 하지만 무서운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을 고개 돌리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 그가 작가이며, 작가가 세상의 모습을 그려 보여줄 때 그것은 거울이 되어 우리의 민낯을 비춘다. 우리는 그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우리의 매무새를 바로잡는다.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닌 이야기, 그 이야기가 바로 진정 문학일 것이다.


*김동식 작가는 성수동 주물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노동자이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공포 게시판에서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다.


(*표지 이미지는 알라딘 인터넷서점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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