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대하여
마을을 관통한 숲은 언제나 고즈넉했다.
어스름이 내리는 숲의 자욱한 고요
가지 긴 나무의 내밀한 그늘마다
날개 접은 까마귀들이 우후죽순 들어찼다.
꼬리가 흰 토끼들이 산책로를 가로질러 뛰어가고,
가끔씩 이방의 주민들은 큰 개를 끌고 어슬렁대며 지나친다.
오래된 목조주택 앞 앙상한 레몬나무에
노오란 전구처럼 밝혀진 레몬 몇 알
안개가 내리듯 쓸쓸함이 내리는 이방의 숲
뿌옇게 목젖을 누르는 그리움이 나보다 먼저 눈가에 닿았다.
*가족과 미국에서 생활한 일 년은 번아웃 상태의 내게 적절한 휴식시간이었고,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의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삼총사처럼 붙어 다녔고(어디든 차를 움직여야 갈 수 있는데 차가 한 대뿐이라서), 같은 시련에 맞서는 아군으로 결속되었다.(주로 남편이 모든 일을 해결했지만, 가끔 남편의 발음 한두 개를 못 알아듣는 원어민이 아이 발음은 알아들었기에 우리는 한편으로 똘똘 뭉쳐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야 했다. 나는…, 나는 가사에 주력한 걸로 해두자.)
저녁 식사 후에는 동네 숲길을 걸었다. 어둠이 묽은 염료처럼 조용히 스미는 즈음이면, 토끼들이 하얗고 동그란 꼬리를 씰룩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관목숲 아래로 사라지곤 했다. 가끔씩 개를 산책시키러 나온 동네 주민이 스몰톡을 시전하면 짧은 인사말 이후가 막막해서 진땀이 솟았다.(나만의 증세가 아니란 걸 최근에 브런치 작가님들 글을 통해 깨달았다.)
어느 날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숲길에 접한 주택에 환하게 불이 켜지고 책장이 보이는 거실에 사람들이 맥주병을 들고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홈파티 장면이었다. 그 순간 나는 어쩐지 두고 온 모든 게 그리워져 눈물이 솟을 것만 같았다. 맥주잔을 앞에 두고 두런거릴 누구도 곁에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실감났다. 남편이,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도 친구들 불러서 파티하자며 달랬지만 불려 나온 그리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줄 알면서도 그때는 그랬다. 우리는 일 년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오래전 그때, 그 이방의 숲을 그리워한다. 그 숲에 내리던 저녁 어스름을 떠올리고 까마귀가 깃을 접고 내려앉은 키 큰 나무와 토끼의 하얀 꼬리털을 생각한다. 남편은 그곳에 언제 다시 한번 가보자며 훗날을 기약한다.
일상에 발 내린 인간에게 그리움은 늘 먼 저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