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육아
“아랫집에서 조금 조용히 해달라는 얘기가 들어왔어요.”
경비아저씨가 말을 전했다. 그저 다른 누군가의 얘기라고만 생각했던 층간소음 유발자로 이웃의 항의를 받은 것이다. 처음엔 바로 아랫집도 아닌 아래 옆 호수에서 말이 나왔다기에 ‘정말 우리집에서 들리는 소음이었을까’ 잠시 의구심을 가졌지만, 우리집엔 원인을 제공할만한 위험요소가 있었다.
우리집엔 호기심 넘치고 에너제틱하고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두 돌 남짓의 남자아이가 있어요.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이웃에서 들리는 소음에 꽤나 민감한 편이었다. 처음 살던 집에서는 새벽녘 술에 취해 돌아온 윗집 아저씨가 케이지를 탕탕 두드리며 강아지와 놀아주는 소리가 거슬렸고(안면있던 윗집 아저씨에게 당부하다가 사과와 함께 직접 들은 소음의 출처다), 다음 집에서는 아이 공부를 가르치다 끝내 분노한 옆집 아주머니의 질책 섞인 고함소리가 신경 쓰였다. 민감한 만큼 남에게도 피해가 되지 않으려 했기에 남편과 둘이 지내면서는 층간소음의 피해자가 됐으면 됐지 주범이 될 일은 없었다.
아이를 낳고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기고 걷고 뛰는 과정을 열렬히 해내는 아이를 보는 것은 너무나 큰 기쁨이었지만 걱정이 뒤따랐다. 온 힘을 다해 바닥을 차며 달려오는 소리, 최애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끌고 집안을 순회하는 소리, 기분이 좋아 몇 차례고 높이 뛰어올라 착지하는 소리..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나고 있다는 예쁜 소리들이었지만 그건 부모인 우리에게만 해당될 뿐, 남에게는 그저 거슬리는 소음일 가능성이 컸다. 이전의 나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결국 그렇게 층간소음의 주연이 되었다.
아직까진 이웃의 대대적인 항의를 받은 것도, 큰 싸움을 벌인 것도 아니었지만 약간의 주의를 받은 후엔 아이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꽤나 마음을 졸였다. 앞으로도 계속될, 아니 어쩌면 더욱 심해질 장기적인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 순간 팔자눈썹을 하고 아이를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먼 미래로만 생각해온 단독주택의 꿈을 앞당겨 실현시켜야 하는지까지 고민이 이어졌다.
층간소음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된 ‘아파트 나라’ 대한민국에서 그동안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워온 걸까, 이런 환경을 조성해놓고 아이 낳기를 장려할 수 있는가.. 별의별 생각까지 다 들어 이러다간 제도까지 바꾸겠다고 나서게 될 판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당장의 이웃에 대한 미안함과 나의 불안감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웃들한테 편지를 써야겠어.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이웃분들께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저희 집엔 두 돌이 조금 안 된 아이가 있어요.
세상 모든 게 신기한지 뭐든 직접 해봐야 하고, 그 작은 체구로 놀랄 만큼 에너지가 넘친답니다. 그러다 보니 이웃분들께 불편을 드릴까 싶어 바닥에 두꺼운 매트도 깔고 아이에게 주의도 주지만, 어떨 땐 뜻대로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어 늘 마음이 쓰입니다.
혹여 불편을 드렸다면 죄송하고, 그럼에도 배려해주시는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직접 찾아뵐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렇게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앞으로도 최대한 신경 쓰겠지만 혹여 불편한 점 있으시면 말씀 주세요.
그럼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편지와 함께 보낼 간단한 선물은 아래 기준으로 결정했다.
1. 코로나로 민감한 시기이니 밀봉돼있을 것
2. 문고리에 걸어둘 예정이니 늦게 발견해도 상하지 않을 것
3. 연령대를 모르니 크게 취향 타지 않는 종류
고민 끝에 산 무난한 버터쿠키와 편지를 쇼핑백에 가지런히 넣었다. 이웃집들 문고리에 걸어둘 때는 일종의 미션을 실행하는 기분이 들어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얼굴도 잘 모르는 이웃이 걸어둔 뇌물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이런 것 안 받는다고 우리집 문고리에 도로 걸어놓는 거 아니냐며 남편과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은근한 긴장감이 들었다.
다음날, 남편은 집에 들어오는 길에 일부러 계단을 오르며 우리가 걸어둔 쇼핑백이 모두 수거된 걸 확인했다고 전했다.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로부터 이틀 뒤..
우리집 문고리에 쇼핑백이 걸렸다..!
- 계속…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 마켓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