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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 eden Aug 05. 2021

얼굴도 모르는 이웃에게 무언가를 받았다

가장 보통의 육아 X 아이 밥상 에세이

# 앞서 생긴 일



“문에 이게 걸려있었어.”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 손에는 쇼핑백 하나가 들려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발생하는 소음에 양해를 구하고자 편지 한 통과 작은 성의를 담은 쇼핑백을 이웃들 문고리에 걸어놓은 것이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우리집 문에 쇼핑백이 걸렸다니.. 남편과 했던 농담대로 층간소음을 양해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되돌려놓기라도 한 것일까.

조심스럽게 쇼핑백 안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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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모르는 이웃에게 편지와 토마토를 받았다


빨간빛이 생생한 토마토 열몇 개와 가지런히 접힌 편지 한 통이었다. 생각지 못한 내용물의 의미를 알아채기까지 잠시동안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던 우리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감사하다..


회답을 받을 거란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그저 내 상황을 아주 조금만 감안해주길, 만약의 경우라도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해결할 수 있길 바라며 건넨, 어쩌면 아주 자기중심적인 선물이었다. 하지만 이웃의 답은 그것과는 달랐다.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안녕하세요. 답장이 너무 늦었네요.
따뜻한 글과 맛있는 쿠키까지.. 감사합니다.
사실 글을 보고 나서야 3층에 아기가 있는 줄 알 정도로 소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중,고딩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로서 두 돌의 아가들을 키우던 옛생각이 나 마음 졸였을 이웃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론 짠-하기도 했습니다.
매트까지 깔고 노력을 해주신다니 고맙기도 하고, 아이 키운 부모로서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니 걱정마시고 아이와 부디 편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P.S. 지인이 꿀벌로 키운 친환경 토마토입니다. 얼마 안 되지만 나눔해드립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 안에 담긴 것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조건 없는 호의였다. 종이 위 꾹꾹 눌러쓴 글씨를 읽고 있자니 그 생각에 확신이 들어 어쩐지 배 속이 뜨거워졌다. 싱싱한 토마토들을 보고 있자니 식욕이 돈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웃이 나눔해준 꿀토마토,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갓 딴 듯 신선했던 토마토 샐러드

1. 토마토 샐러드

본연의 맛을 느껴보기 위해 조리를 하지 않고 대신 토마토와 어울리는 올리브, 보코치니 치즈, 캐슈넛을 더했다. 특유의 새콤함에 이어 달달한 뒷맛이 느껴졌다. 기분 탓인지 정말 그러했는지, 마트에서 산 토마토에선 못 느껴본 생생함이 입안에 감돌았다.


식사로도 손색없는 토마토 달걀볶음

2. 토마토 달걀볶음

토마토를 기름에 익히면 영양소 섭취에 더 효과적이라고 해서 아이 아침식사로 자주 하는 메뉴다. 평소에는 방울토마토를 주로 사용했는데 일반 토마토를 잘라 조리하니 기름에 훨씬 빨리 익고, 즙이 풍부해 달걀에 맛이 잘 배어들며 촉촉했다. 대신 금세 숨이 죽고 뭉그러져서 조리시간을 짧게 하는 게 좋다.


호박죽 색깔의 토마토 수프

3. 토마토 수프

늘 쟁여두는 라구소스(https://brunch.co.kr/@harims84/37​)를 할까 하다가 주연인 토마토가 더 빛나도록 다른 재료를 최소화해 수프를 만들었다.

양파를 달달 볶아 캬라멜라이징해 단맛을 끌어올리고, 끓는 물에 데쳐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웍에 넣고 함께 볶는다. 버터는 양파를 볶을 때부터 넣으면 타기 십상이라 이때 넣어준다. 토마토가 뭉근해지면 물이나 육수, 우유 등으로 농도를 맞추는데 아이와 부드럽게 먹어보려고 우유를 선택했다. 적당히 끓인 것을 믹서에 갈아서 다시 웍에 넣고 약한 불에 끓이면서 소금, 설탕으로 원하는 간을 맞춘다. 마지막에 레몬즙을 한 스푼 정도 둘러 상큼함을 살린다. 먹을 때 치즈를 올려주면 진하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이에게 토마토를 맛보이며 이웃사람이 나눠준 것이라고 말해주었더니, 그 이후로는 토마토 요리를 내줄 때마다 “이웃사람이 준 거야?” 하고 묻는다.


그 특별한 토마토는 이미 우리 뱃속에 있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옆집 아저씨는 고맙게 잘 먹었다면서도 우리까지 챙길 필욘 없었다고 말을 꺼냈다. 아이가 요즘 제법 시끄럽게 굴어 죄송하다고 멋쩍게 웃었더니 소리는 들리지도 않으니 신경 쓸 것 없다고 손을 저었다. 무뚝뚝한 듯 따뜻한 인사가 그간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내 주었다. 그저 내 속 편해보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토록 따뜻한 진심들을 돌려받게 되다니.. 만나는 누구에게라도 떠들고 싶지 않겠는가.


이해보단 혐오가 쉬운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써내려갈  있는  다행히도 너그러운 이웃을 만난 덕일 거다. 그러니  좋은 경험  번으로 세상이 아름답다느니 살만하다느니 하는 소리까진 못하겠다. 다만 소음에 그토록 예민하던 내가 우리집 소음에 양해를 구하게  것처럼, 어제의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없던 누군가가 오늘의 내가  수도 있다는  잊지 말자고 생각했을 뿐이다. 살면서 벌어지는 일은 무엇도 장담할  없으니 누구에게도 함부로 하지 말라고, 얼굴도 모르는 이웃이 건넨 붉고 윤기나는 토마토와 그보다 생기로운 마음이 그렇게 전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어떤 분이려나. 아랫집 이웃 얼굴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커버사진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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