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너무 늦은 나이인 탓에 학계 진출은 진작에 포기했던 내가 선택한 첫 직업은 번역이었다. 일을 한번 손에 잡으면 끝낼 때까지 좀처럼 쉴 줄을 모르는 탓에 원고는 항상 편집진들이 놀랄 정도로 일찍 완성되곤 했다. 그래봐야 눈뜰 때부터 뒤통수를 베개에 붙일 때까지 한 달을 꼬박 일해도 손에 들어오는 건 200만 원 남짓. 돈이 다 들어오는 것도 한두 달이 더 지나 책이 인쇄가 될 때. 게다가 인세 대신 매절이라는 관행도 작가들에게는 불공정하기 짝이 없었다. 번역에 대한 대가만 일회성으로 받으면 그 책이 2쇄를 찍든 3쇄를 찍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대형 출판사일수록 더했다. 번역할 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한 권을 다 읽고 요약하고 샘플로 몇 장을 번역하고 평가까지 적는 작업에 15만 원도 주기 아까워했다. 책 몇 권에 그렇게 나를 갈아 넣은 뒤에야 그 바닥을 떠났다.
다음 직업은 사진작가였다. 생뚱맞게도 바디프로필을 찍는. 10여 년간 취미로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목말랐던 점은 사람을 찍을 기회를 갖는 일이었다. 사람은 나에게 가장 좋은 피사체다. 얼굴에, 몸에, 손가락 하나에까지 담겨있는 물리적인 구조와 정서적인 라인은 그 자체로 스토리가 될 수 있다. 당시 바디프로필은 블루에 레드 몇 방울이 떨어진 것 같은 형상의 시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바다 위에서 5년간을 헤엄치다 보기 좋게 가라앉았다. 이유는? 나를 사업가로 포지셔닝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잘 찍는 장인이면 되는 줄 알았다. 나이브했다. 자본주의의 결을 읽어내지 못했다.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소비자들의 심리는 내 몸과 내 얼굴을 섹시하게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욕망에 편승하면 된다. 빛과 구도는 중요하지 않다. 우아함과 창의성은 잊으시라. 섹시함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헐벗고 괴상한 포즈를 취하며 내 몸의 부족함은 난잡하기 그지없는 형형색색의 소품들로 채워주면 끝. 내 취향과는 대척점에 있는 스타일이었고 그때까지는 자존심을 팔 정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막판 몇 개월 동안 시도는 해보았으나 소품에 돈만 잔뜩 들이고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을 갓 시작하고 푹 빠져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먹고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