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5.7-4

by 하린

나는 옷을 좋아한다. 잘 입는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옷이라는 아이템에 애정이 있다. 수시로 재봉틀을 달각거리시던 할머니 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고도 급작스러웠다. 클라이밍을 할 때 입을 옷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을 했다. 더위를 타는 아픈 강아지 때문에 에어컨이 상시로 돌아가는 방에 들어가지 못한 채 거실에 이불을 쓰고 널브러져 있던 중 아이디어를 떠올린 순간부터 론칭까지는 4개월이 걸렸다. 클라이밍 의류는 독특한 재단이 필요하다. 상의야 상관없지만 바지는 운동할 때 다리를 쫙쫙 찢거나 무릎을 높이 올릴 때가 많은 이유로 가랑이와 무릎 부분에 여유가 많아야 한다. 당연히 제작비도 높은 편이다. 원단에도 품질 좋은 스판이 들어가야 했다. 내 사업은 처음으로 매입비가 뭉텅이로 들어가는 일이 되었다. 처음엔 몰랐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적어도 1년은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이내 빚이 늘어갔다. 매출과 순이익을 구분하지 못했던 초보 사업가의 치명적 실수였다.


2022년 통계로 보면 자영업자 4명 중 3명이 월수입 100만 원 언더라고 하던가. 내가 그 3명 중 하나였지만 정작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요번달 매출은 400이네. 하며 좋아하던 시절은 빚더미와 함께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이 처참한 결과는 단지 내가 ‘장사를 엉망으로 해서’라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클라이밍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의 소비성향은 독특한 면이 있었다. 입장료가 2만 원인 운동을 하면서 5만 원짜리 바지는 비싸서 못 사겠다는 심리가 아주 넓게 깔려 있었다. 바지 그깟 거 만드는 데 얼마 들지도 않는데 몇만 원씩이나 남겨먹는 도둑놈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시중에 널린 중국산 일반 바지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제작비 원가만 해도 디자인이며 뭐며 다 빼고 3만 원이 넘었다. 좀 예쁘게 만들면 5만 원도 훌쩍 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마진을 적절한 수준으로 남길 수가 없었다. 팔리지 않을 테니까. 원가 5만 원이 넘는 바지를 7만 원대에 울며 겨자 먹기로 팔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저렴함을 내세우거나 아예 중국에서 날아온 바지들이 그 좁은 시장에 들어왔다. 운동의 특수성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은 그 바지들은 잘 팔려나갔다. 그래봐야 장기적으로 보면 제살 깎아먹기였지만 시장은 그렇게 파행적으로 돌아갔고 잘 나가던 업체의 매출도 급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나는 3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 이후 시장은? 다 같이 죽어가고 있다. 발을 뺀 시기는 그나마 적절했으나 나는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다시 원점에서 뭔가를 도모해야 했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이가 이만큼이나 먹은 사람을 받아줄 업체는 없을 것이었다. 내 사업을 해야만 했다. 채무조정 기간 동안 취업촉진수당을 받으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와중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창업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대신 알바 같은 불안정한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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