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을 달아드려요. 이게 내 사업 아이템이었다. 사실은 인테리어나 집수리 전반을 다루고 싶었다. 하지만 시작은 작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딸 셋의 막내로 아들 노릇을 하며 자랐던 나에게 자잘한 집수리는 익숙했다. 사진 스튜디오를 세 군데로 이사 다니며 웬만한 인테리어는 셀프로 한 경험도 있다. 그리고 서울시 집수리 아카데미에서 모르던 것들을 배우고 익혔다. 자 이제 실전이다. 사업자를 내고 대한민국 최대의 플랫폼에 서비스 제공자로 등록하며 일을 시작했다.
나쁘지 않았다. 리뷰도 적고 경력도 일천한 나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예상 밖으로 많았다. 잘하면 먹고 살 정도로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일은 힘들었다. 평생 몸 쓰는 일을 하지 않다가 나이 먹어 시작하자니 몸살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죽었던 등이 켜지는 순간 기뻐하는 고객의 표정을 보면 나도 행복해졌다. 그렇게 한 달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몸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내 삶에 굴곡 없는 탄탄대로는 역시 어울리지 않았다. 인테리어 업계에서는 돈 뜯기는 일이 잦다고 하던가. 그게 무슨 소린지 알게 되는 날이 왔다. 내용증명을 보내고 받고. 심신 양면으로 지쳐있는 날이 한동안 계속됐다. 노동의 가치는 무형이고 내 돈은 유형이니 교환하기가 아깝다는 류의 생각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었다. 전등을 교체하는 일은 간단하고 쉬우니 빠르게 끝나야 하고 저렴하게 해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역시 그랬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면 셀프로 하시라. 집까지 찾아가서 석고가루 뒤집어쓰며 어두운 곳에서 헤드랜턴 달고 이마에서 땀을 비 오듯 흘려가며 손가락 인대에 염증이 생길 정도의 힘을 써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를 수는 있지만 아는 척은 하지 마시라.
이 일을 하면서였다. 그간 쌓여온 세상에 대한 서운함이 폭발한 것은. 따지고 보면 내 인생은 천천히 혹은 급작스럽게 하층민의 삶 쪽으로 흐르는 길을 따르고 있었으며 전등을 교체하는 일을 통해 완벽하게 안착했다. 하층민임에는 큰 불만이 없다. 먹고살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먹고 살 수 없다면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살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정서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와중에 앞서 언급했던 일이 일어났다. 거대 플랫폼이 분쟁조정이라는 미명을 통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아주 저열한 형태의 가스라이팅.
나는 싸웠지만 실상은 초라해졌고 위축되었다. 실망이라는 말은 무의미할 정도로 이미 세상에 미련 따위는 없는 상태였어도 찔리는 일은 언제나 아프다. 아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프지 않은 길을 택했다. 나를 죽임으로써 나는 비로소 보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