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비건이 되었나 - 고통의 15년

지금은 비건이 아닌, 비건이었을 때 썼던 글

by 하크니스

나중에 나의 식단에 대해 소개할 기회가 있을 거라서(연재하는 브런치북에 쓸 글), 오늘은 예전에 비건일 때 내가 왜 비건이 되었는지 적어놓은 글을 가져와봤다. 고통의 15년이라는 글이었고, 나는 비건 페스타에서 수기 공모전으로 대상을 받았다. 아마 최우수는 자연을 생각하는 비건이 주제였던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나는 내 건강을 위해 비건이 되었던 이야기로 상을 수상했다. 실제 비건 페스타에 가서, 직접 수상한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내 기억에). 그럼 내 에세이를 소개한다.




고통의 15년..

20살 대학생이 됐을 때 내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한 번도 생긴 적 없던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보통 사춘기 중고등학생들이 겪는 여드름이 대학생 때부터 생겼다. 여드름이 주는 고통은 생각보다 컸다. 여드름을 없애기 위해 피부 관리실, 강남 유명 피부과, 한의원 등 조금이라도 유명한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갔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듯 했으나 여드름은 보란 듯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세수하는 방법을 바꿔보기도 했다. 비싼 화장품도 모조리 사서 써봤다. 피부 미남인 송중기가 쓴 책도 읽어보고 추천하는 마스크팩도 해봤다. 그러나 이 여드름은 36살 때까지 지속됐다. 평생 얼굴에 고름을 달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난 절망했고 포기했다.

15년 정도 이렇게 살다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세수할 때 마다 얼굴이 아파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다보면 피고름이 묻어나왔다. 사람들이 내 피부를 보고 징그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것은 나에게 고칠 수 없는 질병이었다. 피부과에선 다 나을 때 까지 계속해서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한의원에선 계속해서 한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피부 관리실에선 블랙헤드를 제거하고 고름을 짜주기만 했다. 피부과에선 염증부위에 주사를 놓고 박피를 하고 레이저를 주구장창 쏴댔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울도 몸에 있는 지병으로 힘들어했다. 바울은 몸에 있는 지병으로 인해 자신이 겸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바울을 보며 ‘얼굴에 있는 여드름이 날 겸손하게 만든다’라고 위로했다. 그렇게 바울과 동질감을 느끼며 날 위로했다. ‘바울도 그랬는데, 나도 참고 살자. 버텨보자.’라고 되뇌었다.

35살 즈음, 다른 질병도 찾아왔다. 심각하진 않았지만 고통스러웠다. 갑자기 대상포진에 걸렸다. 나는 그저 스트레스가 심해서라고 생각하며 웃어 넘겼다. 병원에서 약을 사먹고 연고를 바르며 버텼다.

항문 근처 엉덩이가 너무 가려워서 앉아있기도 힘들어진 나날들이 있었다. 여드름도 잘 참던 내가 엉덩이가 가려운 것 하나 못 참겠나. 약 1년을 고생했다. 어떤 피부과에 가니까 무좀이라고 설명했다. 2주 동안이나 무좀약을 먹었는데 낫질 않았다. 강남 피부과를 가니 아토피라고 설명했다. 아토피 관련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었다. 약을 먹는게 지긋지긋했다. 집에는 쓰다만 연고들이 넘쳐났다.

잠을 많이 자도 계속 피곤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피곤함이 몰려왔다. 식사 후 30분 정도가 지나면 마치 수포자 아이가 미적분 수업을 들을 때처럼 졸았다.

피곤하고 아프다 보니 예민해졌다. 사람들에게 적대적이고 짜증을 많이 부렸다. 화를 내며 살았다. 세상을 원망했다.

이제 내게 시도해 볼 만한 것이 남았던가? 아니 없다. 그냥 참으며 버틸 뿐이다. 누군가 세상은 원래 고통뿐이라고 말했다. 석가였나, 철학자였나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 친구는 4살 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밤이 되자 아이는 양치를 해야만 했다. 아이는 양치를 무척 하기 싫어했다. 양치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설득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충치벌레가 이빨에 있어서 양치를 하지 않으면 벌레한테 물린단다’, ‘이빨을 잘 닦으면 스마트폰을 보여주마’, ‘양치를 하지 않으면 치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뽀로로를 봐! 네가 좋아하는 뽀로로도 저렇게 양치를 잘 하잖니!’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했음에도 아이는 양치하기 싫어했다. 결국 엄마 아빠가 달려들어 힘으로 겨우겨우 양치를 끝냈다. 아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양치를 해야만 충치벌레가 생기지 않는 다는 것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치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지 않으려면 양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뽀로로가 양치를 잘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아이는 양치하기 싫어했다. 어린아이에게 양치란 ‘중요하지만 하기 싫은 것’이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조엘 펄먼의 ‘식생활 혁명’을 읽고 단식과 채식의 중요성에 대해 공부했다. 브래드 필론의‘먹고 단식하고 먹어라’를 보고 간헐적 단식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 식품회사, 영양제 회사, 낙농업계는 어떻게든 우리에게 음식을 먹이려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존 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 콜드웰 에셀스틴의 ‘지방이 범인’ 같은 책들을 통해 비건(완전 채식)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고단백, 고지방 식사가 얼마나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다. 양치가 중요한 걸 알면서도 양치하기 싫어하는 친구의 아이처럼 비건의 중요성을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날 발견했다.

고기, 화식(불에 익힌 음식)을 즐겼고, 각종 정크푸드를 먹는 걸 즐겼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모든 음식들은 내 혀를 마비시켰다. 달걀을 하루에 6개씩 먹었다. 단백질을 보충한다는 목적에서였다. 소고기는 1kg도 거뜬히 먹었다. 채소, 과일은 비싸다는 이유로 멀리했다. 그러면서 더 비싼 소고기는 잘만 먹었다. 치킨은 내 친구였다. 스마트폰 터치만 하면 우리집 현관문까지 튀겨져 오는 치킨을 멈추는 건 쉽지 않았다. 비건이 내 몸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건은 어린아이의 양치처럼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친구네 집에서 양치를 하기 싫어했던 아이를 본 후, 나는 큰 고민 없이 비건이 되었다.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비건이 된 후 내 삶

첫 시작은 완전 비건으로 시작했다. 과일, 채소, 현미밥 세 가지만 먹는 식단을 선택했다. 바나나를 숙성시켜 먹기 위해 고품질 바나나를 한 번에 5~6송이씩 샀다. 집에서 잘 숙성시켜서 한 끼에 한 송이씩 먹었다. 감자나 고구마 같은 통곡물을 물에 삶아서 먹었다. 회사에 가는 날이면 현미밥을 보온도시락에 싸가서 먹었다. 간을 하지 않은 곱창김과 함께 먹었다. 현미밥은 멥쌀과 햅쌀을 1:1로 섞어서 8시간 물에 불린 후 밥을 지어 먹었다. 나는 평소에 배드민턴을 즐겨 치기 때문에 운동 전 후로 허기짐을 많이 느꼈다. 그래서 녹말식을 자주 할 수 밖에 없었다. 녹말이 많이 들어있는 현미밥이나 바나나를 주식으로 삼아서 허기짐을 달랬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피부에 있던 여드름이 모두 사라졌다. 16년 동안 돈이란 돈, 시간이면 시간,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치고 싶었던 피부질환이 단 7일 만에 해결되었다. 나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놀랬다. 흉터나 여드름으로 변색된 자국들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가장 고통을 주던 화농성 여드름이 다 사라졌다. 화농성 여드름이 사라지자 얼굴이 많이 편해졌다. 엄청 기뻤다.

삶이 간단해졌다. 아침엔 공복을 유지했기 때문에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점심은 현미밥을 먹었기 때문에 직장 동료들과 ‘오늘 점심은 뭐 먹지?’라는 인류가 가진 영원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녁은 통곡물이나 바나나를 먹었기 때문에 식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먹을 것이 너무 넘쳐나는 세상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는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주어진 음식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었다.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바나나, 현미밥, 생김, 감자, 고구마, 오렌지, 사과, 딸기 등 각종 과일과 곡물들을 사먹어도 예전에 들던 식비보다 훨씬 적게 들었다. 매달 카드내역을 보면 거의 식비로 사용했었는데 그런 비용들이 상당히 줄어들어 비싼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쓸 데 없이 병원에 갈 일이 줄어들었다. 이제 피부과를 가거나 비싼 화장품, 마스크팩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각종 다이어트 프로그램, 식품, 영양제, 건강보조식품에 일절 돈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비건 생활은 최상의 건강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배드민턴을 오랜 취미로 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예전에는 쉽게 피곤하고 지쳐서 열심히 치고 싶어도 칠 수 없었다. 그런데 비건이 되고 난 후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생겼다. 콕이 더 잘 보이고 몸은 더 빨라졌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 비건을 하면 육식을 할 때 보다 훨씬 몸에 활력이 생긴다고 한다. 일주일에 세 번은 헬스장에 갔고 세 번은 배드민턴장에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함이 더 줄었다. 출근할 때 버스타고 1시간 정도 걸렸다. 육식을 할 땐 무조건 자면서 갔다. 그런데 비건이 되고 나선 졸리지 않았다. 정신이 멀쩡해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 무조건 졸던 내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바로 일해도 잠들기 전까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슈퍼맨이 된 기분이었다.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됐다. 회사 동료 중 한 명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는데 내 식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이라는 존 맥두걸 박사의 책을 빌려줬다. 그 동료는 그 책을 읽고 식생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현재 나와 함께 비건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와이프도 비건 생활을 시작했다. 또한 식단은 절대 못 바꾼다고 주장하던 친동생도 비건 식단을 시작했다. 동생과 나는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였다. 그런데 비건에 대해 공감대가 생긴 후 그 날 그 날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이야기 하느라 전화 통화하는 횟수가 늘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회사에서 메디컬 교육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걸리는 질병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암, 뇌혈관질환, 허혈성 심장질환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회사에선 ‘누구나’한 번은 이 병에 걸리고 이 세 가지 질병 때문에 사망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공포를 느꼈을 것이고 이 세 가지 질병 중 하나는 걸릴 수 밖에 없는거라고 세뇌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감사했다. 저 질병들이 날 괴롭힐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무엇보다 건강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우리의 기대수명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건강수명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유가 뭘까? 바로 식습관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난 식습관을 바꾸고 과도하게 가입하고 있던 보험도 어느 정도 정리했다. 한 달 고정지출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보험료를 줄일 수 있어 경제적으로 보탬이 됐다.

내 몸을 차지하고 있던 지방이 줄어들었다. 마른 몸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부지방률과 전체적인 체지방량이 많았었다. 2주 만에 지방만 2kg 감량됐고 체지방률이 2% 줄었다. 간헐적 근력운동을 통해 골격근량은 늘려가고 복부에 끼어있는 지방은 제거함으로써 비건 몸짱이 되겠다는 꿈도 생겼다.

정신이 건강해지고 짜증내거나 예민해지는 일이 줄었다.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몸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큰 변화가 생긴 듯 했다.


비건인 나탈리 포트만은 이런 이야길 했다.


‘먹는다는 것은 당신의 믿음을 하루 세 번 선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종교들이 음식에 대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거죠. 저는 생명은 소중하고 다른 살아있는 것들을 고통스럽게 하거나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저 스스로에게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방식대로 먹고 있는 겁니다’


나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나의 믿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인상 깊었던 말 한 가지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You are what you eat",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 자신이다. 몸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뭘 먹을 것인가? 당신의 몸이 당신이 먹는 것을 증명한다. 우린 몸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할 수 있다.

마지막 날까지 내 몸을 사랑하고 내 몸에 떳떳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현재 비건을 하고 있진 않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쓴 글을 다시 보니 정말 좋은 점이 많았던 게 기억난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변수로 인해 비건을 하고 있진 않지만, 언제든 내가 원할 할때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나는 기억이 난다. 내 몸이 정말 최상이었고, 주변에서도 정말 신기해 했다는 걸. 그리고 현재 비건을 못하는 대신 사회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식단을 나중에 소개할 예정이다. 이 모든 정보, 지식들은 다 나의 건강관련 독서에서 나왔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분들은 반드시 건강관련 서적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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