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문

우리가 버린 도시

20.11.03 작성글

by 사람

고향에서의 어제와 오늘의 기록이다 나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고 그 아이 때문에 떠났다 친구는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

친구는 나와 고교 시절 인간과 사랑 그리고 종교 같은 진부하고도 어두운 내면의 이야기를 밤새도록 나누며 더 나아가 그것에 연관을 지어 삶이란 대체 무엇인지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던 터질 듯이 쌓여가는 생각들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표정은 어디에도 지난날의 슬픈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대신 평온함이 가득 묻어났다 친구도 나도 서로의 과거를 입에 담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웬일로 내려왔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고향이 그리웠다고 둘러댔다 그대로인 것을 보기 위해 찾아온 작고도 보잘것없는 이 도시에서 나만 그대로인 것 같았다

함께 싸구려 컵밥을 먹고 자유로운 고양이를 보고 짐을 나르는 할아버지를 돕고 하나둘 모여든 마을 어르신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었다 감사하게도 나를 기억하는 어르신도 계셨다 어린 시절부터 어울리지 못해 사람 대하는 방법을 몰랐고 죽고 싶은 날이면 오는 연락을 모두 끊어버리는 버릇 탓에 지인이 몇 명 없는 나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유난히 바쁘게 지나간 하루에 숨을 돌리니 어느새 하늘이 까맣게 얼룩져 있었다 친구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아 어려서부터 원치 않는 독립을 했다 학생 때 내 집보다 더 드나들던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냉장고는 캔맥주로 가득했다 맥주 좋아한다더니 달고 사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곧장 꺼내 들고 안주도 없이 마셨다 얼마나 많이 속에 들이부었는지 사이좋게 번갈아 가며 몇 번을 위액과 함께 쏟아냈다 그러고는 누구의 인생이 더 비극적인지를 따졌다 나는 재혼가정이고 부모가 나를 안 보려고 해 형제들은 아직도 못 찾았어 그래도 나는 네가 혼자 사는 집이 있다는 게 부러워 월세 아끼려고 남이랑 살아봤냐 또 최근에는 점장이랑 알바생들 앞에서 울면서 잘렸어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나는 대학도 못 가서 애인 부모한테 못 배운 년이라고 욕까지 먹었어 나는 애인도 없는데 너 대학 가서 뭐 했어 그러게 친구들 좀 많이 사귀라니까

오래 보지 못한 만큼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알면서도 묵인해왔던 이 도시로 내려온 목적들이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었다 그 아이의 초점 없는 눈과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방안은 곯아떨어진 친구와 창문에 온몸을 부딪히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나는 그 밤 내내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벽에 직면한 것 같은 막막함에 몸서리를 치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사랑을 하는 이들을 원망하고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세상의 모든 신들을 원망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자는 친구를 뒤로하고 겉옷을 챙긴 채 집을 나섰다 여름이 한 발 물러간 아침은 겨울처럼 제법 추웠다 친구의 집과 고교는 걸어서 한 시간 거리였다 이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도시의 거리를 죄다 외우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학교 후문은 펜스로 잠겨 있었다 펜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명치까지 왔다 입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세 살 어렸던 그 아이도 이 펜스를 넘고 야자를 하던 나를 그늘도 없는 벤치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다렸다

그때를 되감자 여린 마음은 아픔으로 깊어만 간다 드넓은 운동장은 그 아이를 비워내고 파열음이 이는 소용돌이로 변한 지 오래였다 마음은 절망과 희망을 들락날락거렸다 페인트로 도색된 나무가 벤치 아래로 그늘을 만들었다 그 아이에게 바뀐 벤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년 전 그 아이처럼 보고 싶은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시멘트 덩이의 벤치 위에 드러누워 미처 들지 못한 잠을 자거나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내려고 애쓰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아이를 주연으로 두고는 행복한 망상을 했다 그 아이의 미소가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학교의 종이 몇 번이나 울려 퍼졌고 익숙한 교가의 가사가 귀 주변을 맴돌았다 언제부턴가 친구가 곁에 누워 있었고 여기 있을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고 친구는 포기한 꿈을 생각하면서 오랜 시간을 누워만 있었다 우리가 열망하던 것은 공통점이 많았고 끝내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꽤나 절망스러웠다 운동장은 학생들로 소란스러웠다 친구의 머리맡에는 피로회복제 한 박스가 있었다 친구를 따라 담임이었던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아직도 친구가 쟤밖에 없냐며 농담을 했다 나는 과거를 잊은 사람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괴로웠던 어린 시절은 나를 볼품없게 수식할 뿐이었다

친구의 집으로 돌아와 인스턴트 밥과 인스턴트 반찬을 먹고 늦지 않게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갈 준비를 했다 친구는 갑작스럽게 연락을 끊는 버릇을 고치라며 다음에 올 날짜를 정하라고 난리였다 다음 주 토요일에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달력에 동그라미까지 치며 친구를 안심시켰다 그 아이도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의 버릇 때문에 괴로웠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차에 오르는 마음엔 주체할 수 없는 연민들이 가득했다 사랑했지만 사랑에 서툴러서 사랑해주지 못한 과거가 이제는 보기 좋은 미련으로 남았다

기차 밖의 풍경을 내리기 직전까지 응시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아이와의 추억 때문에 어떠한 풍경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왜 그 아이를 보내야 했는지 왜 강하게 떠밀던 자신을 말리지 못했는지 앞으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무능력함이 견딜 수 없었다 견딜 수 없게 억울한 것은 이미 나에게 그 시절의 불같은 열정도 목숨까지 버려내며 지키려 했던 뜨겁게 끓어오르는 마음도 그 아이를 떠나보낸 이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어느 정도 희석되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학생이었던 우리는 언제나처럼 고교 벤치였다 그 아이는 우리가 서로에게 재미있는 지옥이라며 핸드폰에 있는 나의 흔적을 모조리 지웠다 나의 핸드폰도 그 아이가 가져가 손을 댄 지 오래였다 그러고는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해댔다 언제나 여리고 순종적이었던 그 아이가 막무가내로 나를 몰아붙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몇십 번은 연습했겠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그늘도 없는 벤치에서 이별 놀음을 했다 찌는 듯한 날씨로 온몸에 땀방울이 맺히고 증발하기를 반복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우리는 말라가고 있었다

상처를 준 것은 나인데 상처 받지 말라고 했다 기억하고 싶은데 잊어버리라고 했다 아무 잘못이 없는 그 아이의 희생적인 태도 때문에 화가 치밀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 아이의 핸드폰을 무식하게 뺏어 들고는 번호를 다시 입력했다 지우면 죽어버릴 거라고 했다 그런 말밖에 할 줄 몰랐다 마지막까지 나는 무뚝뚝했고 울고 있던 그 아이를 달래주지 않았다 사랑이 부끄러워 숨어서 해야만 했던 나는 다분히 폭력적이었다

그 후로 그 아이는 고교 벤치는 물론이고 좁은 도시에서조차 모습을 감추었다 핸드폰에는 지워졌지만 손이 기억하고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며칠 동안 전원이 꺼져 있었고 끝내 번호가 바뀌었다 그 아이의 집으로 달려갔지만 발도 들이지 못하고 쫓겨났다 그들도 나 때문에 하나뿐인 자식이 학업에 손을 놓고 남의 학교를 드나드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아이의 친구 덕분에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혼자 이 도시를 떠났고 얼굴도 몰랐던 사촌의 집에 얹혀산다고 했다 가족과 친구와 공기 맑고 조용해서 마음에 든다던 이 작은 도시를 포기하고 떠났다 나는 그 아이를 소유물처럼 휘둘렀고 화도 주체하지 못했으며 해준 것 없이 고생만 시켰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허나 그 아이는 상처를 매달고 떠난 뒤였다 조심히 가라고 배웅도 하지 못했다 그것을 차마 견딜 수가 없어서 나도 떠났다 그리움이 버거워 도망쳤다 내 나이 열아홉의 여름이었고 시간은 흘러 두 번의 여름이 뒤따라 지나갔다

언젠가 다시 마주 보게 된다면 애타게 기다렸다고 웃어야 할까 다시 돌아온 것이 가여워서 울어야 할까 모든 것이 막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너는 나의 세상이었고 나는 이 세상에 지은 죄가 많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너를 기억해내고 기꺼이 아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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