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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낙형 Jan 21. 2021

21세기 글로벌 민중가요 K-POP

KPOP은 어쩌다가 전세계 시위 현장에서 떼창되고 있는 걸까?

트럼프의 퇴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작년에 있었던 미국 대선과정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지금이야 지나간 일이라서 웃으면서 트럼프의 낙선에 대해 박수를 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뭐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혼돈 그 자체였던 것 같다.


특히 접전지역에서 결과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상황이라, 방송국의 한 템포 늦은 뉴스보다는 SNS(특히 트위터)를 통해 더 빠르고 현장감있게  대선 소식을 지켜봤었는데, 개표기간 동안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트와이스의 Feel Special 노래가 Anti-Trump Anthem 이 되어 유행하는 현상이었다. 


Feel Special 이 BGM으로 깔린 조지아주 역전 축하 영상


그냥 재미난 해프닝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사건이지만, 작년에 홍콩, 칠레에 이어 태국까지 전세계적으로 반정부 시위의 뉴스가 많이 들려왔었고, 그 때마다 시위현장에서 사람들이 다함께 KPOP을 부른다는 뉴스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KPOP이 21세기 민중가요라는 드립도 나오고 그랬는데, 이게 그냥 밈으로만 소비하기에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한 일도 아니고 전세계에서 국가와 인종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라면, 이건 우연이 아닌 필연의 결과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관련글을 찾아보고 원인에 대한 나름의 추측을 적어본다.


관련 현상을 다룬 기사들을 찾아보면, KPOP이 원래 정치성을 최대한 표백한 상품이지만 점점 소비자들에 의해서 정치성을 띄어가고 있으니, 상업적인 피해가 없도록 신경쓰자는 한국 엔터 회사들을 걱정해 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한창 미국 대선 레이스 중이던 여름에 쓰여진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트럼프의 유세장을 온라인 매진시키고 정작 유세장에는 나타나지 않는 No Show 방식으로 유세를 망친 KPOP 팬들에 대한 분석기사였다. 


이 기사를 좀 인용하면, No Show 운동을 벌인 KPOP 팬들은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젊은 진보층이며, 개방적이고 사회문제에 적극적 관심과 행동을 보이는 미국인들로, 이제는 무엇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시할 준비가 된 집단"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원래 서구사회에서 KPOP은 대형 공장과 같은 기획사들의 맞춤형 상품으로, 아이돌 가수들도 그리고 그들의 음악도 개성이 없는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문화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으로써도 이런 평가에 대해서 차마 부정은 못하겠는데, 어느날 갑자기 정치적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하는 열정적인 집단이 향유하는 문화 상품이 되어있다니?!


특히 한국에서 연예인은 정치적인 이슈에는 절대 휘말리지 않는 게 상식이고, 팬들도 자신의 우상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데, 왜 이런 KPOP이 바다를 건너니까 갑자기 정치적 성향, 그것도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진보주의자들이 시위현장에서 떼창을 하는 노래가 되어버린 걸까?


아까 인용했던 기사에서는 역으로 그런 조심스러운 발언과 행보를 해야 하다보니, 모든 팬들이 반대없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선(Virtue)에 있어서는 KPOP 아티스트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그 시발점이 된 사건이 Black Lives Matter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칭찬받을 수 밖에 없는 보편적 선행, 보편적 건전함, 보편적 인권 의식을 가진 KPOP 스타들,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 인터넷을 통해 집단적 행동으로 지지를 보내는 팬들의 응답이 결합하여, 자선 모금 운동이나 흑인 인권 문제 같은 보편적인 선을 향한 적극적 메시지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그래서 트럼프가 그동안 보여온 행동들은 이런 케이팝 팬들이 믿는 보편적인 선함이라는 가치에 반하는 행위이고, 이들은 적극적으로 트럼프를 낙선시켜야 하기 때문에 No Show 운동같은 정치적 행동을 벌이는 21세기 디지털 사회운동가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KPOP 혁명'이 미국 대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기사는 마무리 된다. (참고로 이 기사는 7월 3일에 발간된 기사이다)


기사 원문 : 케이팝 팬들 왜 이러는 거지? 세계 언론이 바빠졌다.(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655406)


이 기사를 읽으며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점이 많았고, 비슷한 관점에서 독재라는 악에 맞서는 반정부 시위대들이 보편적 선함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그들이 향유하고 있는 문화인 KPOP이 저항의 상징으로 시위 현장에서 떼창으로 불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석에 추가하고 싶은 의견이 있는데, 그건 바로 KPOP은 해외에서 인터넷 소셜 미디어와 함께 성장한 10대~20대의 젊은 세대가 향유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어 '저항정신'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젊은 세대가 즐기는 음악은 항상 비주류였지만, 그들이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 재밌게도 그 비주류였던 음악이 주류가 되면서, 다음 젊은 세대들은 언제나 새로운 음악을 찾아서 듣는 현상이 나타났었다. 


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랬고, 60년대 비틀즈가 그랬고, 그 뒤에 Rock of Ages가 있었다. 20세기 말 락음악이 주류로 자리잡고 저항 정신을 잃어버렸을 때 등장한 비주류의 분노를 담은 힙합-랩 뮤직은, 이제 20년이 지나 락음악이 차지하고 있던 팝음악의 메인스트림이 되어 FLEX만 할 뿐 더이상 저항 정신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젊은 세대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쪽이었고, 그들은 매 시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이전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저항을 해왔다. 홍콩, 칠레, 태국 그리고 미국에서도 젊은 세대들은 KPOP을 듣는다. 그들이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불합리한 세상에 저항하고 반대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온다면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될까? 저 꼰대들은 모르는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해주는 노래가 무엇이 있을까?



한국에서야 KPOP이 주류음악으로써 철저하게 기획되어 만들어진 상품이지만, 이게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로 퍼지면서 지금 한국 바깥에서 KPOP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 사회의 주류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주류는 아니지만 이걸 즐기는 사람이 쿨해 보일 수 있는 그런 음악. KPOP이 딱 그 니즈에 맞다보니 특히 비주류인 젊은층을 중심으로 글로벌하게 퍼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KPOP 아티스트들은 본인들의 음악이 저항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며 노래를 만들었을 것 같지 않지만, 좋던 싫던 이미 전세계의 KPOP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에 의해서, KPOP은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는 민주주의와 저항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5년 전 이화여대 시위에서 소녀시대의 '다만세' 떼창을 들었을 때, 뭐랄까 드디어 우리나라도 세대가 바뀌기 시작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땐 지금처럼 KPOP이 전세계 시위현장에서 떼창송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었지만, 지금은 앞으로도 전세계 시위현장에서 다음 세상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KPOP이 떼창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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