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로

by 하루달


* 이 글의 진짜 작가는 나의 부모님이다. 딸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기록했을 뿐이다






엄마가 그토록 같이 가자던 봉하마을을 남편에게 가자고 했다. 어릴 적 정치에 관심 없는 고등학생 나는 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정치인 얘기를 하는 것이 낯설었다. ‘엄마도 정치를 아는구나, 의외인데’ 정도로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고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모습에서 엄마를 떠올린다.


가을의 뜨거운 햇살은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흠뻑 젖어들었다. 재각재각 자갈 소리와 파란 하늘, 노란 바람개비는 물 위에 비치어 조각보 같은 무늬를 만들었다. 뒤쪽에는 부엉이 바위가 쓸쓸하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을 전체가 짙푸른 녹색과 사람들로 한 덩어리가 된다. 휠체어에 탄 노부모를 끄는 어르신 아들,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 중학생 아이들과 같이 온 가족, 친구들과 같이 온 젊은이들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또 다른 조각보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존경과 함께 고해성사라도 하듯 장거리를 달려와 묵념을 하고 눈물을 흘린다. 아름답고 숭고한 인생에 감사하고 이해하지 못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듯하다.


버스 아저씨들이 운전하는 자가용 오너 주부들을 혐오하던 불행한 시절 1990년대가 있었다. “집에서 밥이나 짓지 왜 싸돌아다니냐”라고 삿대질을 했다. 그러면 주부들은 자가용에 밥 다 짓고 나왔다고 종이를 붙이고 다녔다. 엄마도 그런 대접을 자주 받았지만 절대 그런 종이를 붙이고 다니지 않으셨다. 그래서 미움을 산 것인지 어느 날 버스 기사와 싸움이 일어났다. 여자 운전자임을 보고 엄마 차 옆으로 바짝 버스를 대고 차에 흠집을 낸 것이다. 엄마는 차를 세우고 먼저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왜 여자가 차를 몰고 나왔냐”는 말을 들었다. 엄마가 손해 배상을 묻자 그제야 아저씨는 옆으로 너무 바짝 댄 거 아니냐며 승객을 태운 채 1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승객들 모두 아저씨에게 빨리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엄마는 진정한 사과 한마디면 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엄마는 무례한 아저씨의 소극적인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엄마는 여자가 차별받지 않는 정의가 바로 서는 작은 세상으로 나간 씩씩한 여성이었다.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 용기. 나에게 그 몸짓과 목소리가 남아있나 생각해 본다. 그리움 조각 하나를 여기에 떨어뜨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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