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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Aug 24. 2023

자유롭게 떠나는 카라반 여행

드디어 출발


드디어 떠날 수 있는 날이 왔다.


고 3 딸이 눈치가 보여 카라반이 도착해도 여행을 떠날 수 없었는데 기말고사도 끝났고 다음 날 딸의 생일이고 마침 토요일이다. 토, 일 가볍게 다녀오자고 설득했다. 아들과 딸이 카라반을 처음 보는 날이다. 카라반을 아파트에 주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는 한 가구당 2대만 주차를 할 수 있고 캠핑카는 민원이 많이 들어와 곤란하다고 한다. 매번 주차하기 힘든 상황을 잘 알기에 박박 우길 수가 없었다. 근처 왕숙천 넓은 주자창에 장기 주차 계약을 했다. 그 계약서를 보여주고 남편이 1종 대형 면회를 따고 나서야 카라반이 출고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신기해서 여러 번 가서 구경을 하고 쓸고 닦기를 했지만 다 커버린 아들, 딸은 자신의 일로 바쁘다며 나중에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물을 보고는 나중에 서로 자신에게 달라며 농담을 건네며 여기저기 구경하는 모습이 초등학생 같았다. 행복하게 잘 쓰고 손때 묻은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 날씨가 너무 덥다. 그래도 나는 우리의 처음 계획대로 노지 캠핑을 하자고 했다. 남편은 처음이고 자신이 없다며 넓은 캠핑장으로 우선 첫 단추 끼우기를 원했다. 우리는 반려견 해치와 함께 캠핑장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예민한 해치만 바라보고 보살피다가 왔다.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 같은 강아지에게 예민하게 구는 해치의 짖음을 막기 위해 텐트 안에만 있거나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했다. 그래서 해치와 여행을 떠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반려견 동반 가능하면 무엇 하나. 사회성 없는 해치는 자신의 동족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데. 그래서 해치와 여행하기 위해 카라반으로 노지를 여행하는 것이 필요했다. 내 머릿속에는 벌써 걱정과 불안이 가득하니 남편의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더우니까 에어컨도 쓸 수 있는 캠핑장으로 가자고 난리이다. 입이 삐죽 나온 채 떠났다.


묵직한 대형 버스나 트럭을 운전하는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처음 알았다. 조수석에서 나는 백미러를 통해 회전할 때마다 체크를 하고 속도를 더 낮추라고 소리를 질렀다. 날씨도 더운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땀범벅이 되어 버렸다. 드디어 한탄강 오토 캠핑장에 도착했다. 아, 그런데 바퀴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다. 회사에 전화를 하고 여기저기 체크를 한 결과 오늘 날씨가 너무 더워 그런 것 같다는 안심되는 말을 듣고 날씨를 체크하니 올해 가장 더운 34도란다. 미쳤다. 하필 이런 날씨에 첫 여행이라니. 아, 기억에는 아주 오래 남을 것 같다.


아들이 없으면 카라반 여행이 힘들겠다. 카라반과 차를 분리한 후 카라반을 균형을 맞추며 네 귀퉁이에 있는 네 개의 작은 다리를 내린다. 태양열 충전기로 얻은 전기를 확인하고 전기선을 연결한 후 각각의 스위치를 누른다. 남편은 처음이라 당황하는 것 같았다. 뭐든 느리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괜찮아?라는 물음에 텐트 치는 캠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웃는다. 문득 남편의 얼굴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분명 카라반 여행을 하자는 사람은 나였는데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남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참 많이 참고 사는구나 느꼈다. 늘 나만 손해를 본 것 같은 우리 사이의 간격이 다른 시점으로 다가왔다.


아들과 딸의 진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니 나는 여유로워지고 느려진 느낌이었다. 나는 느리게 살고 싶다. 너무 빨리 가는 시간이 아쉽고 싫다. 적응하기가 어렵지만 안간힘을 쓰며 따라가는 중이다. 빨리 하는 습관이 되어 버린 나의 몸, 생각이 싫다. 도시 사람들은 여유로움도 연습을 해야 한다. 도시의 시간과 시골의 시간은 분명 다르게 흐른다. 가끔 이곳에 와서 연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여름의 또 하나의 복병은 벌레였다. 카라반 밖에는 조명등이 붙어있다. 빛을 쫓는 벌레들이 문을 여는 동시에 카라반 안으로 들어온다. 딸은 전기모기채로 백 마리도 더 되는 벌레를 잡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닥에는 벌레의 시체가 가득하다.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면서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집보다 좁은 복작거리는 이 공간에서 땀을 흘리며 같이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편하고 예상에 딱 맞아떨어지는 여행보다 불편한 예상 밖의 여행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편안하고 안락한 일상을 보내다가 불편함을 주는 여행을 기꺼이 떠난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집이 최고다라는 말을 한다. 최고인 집을 떠난 이유, 사랑하는 사람과 느끼는 촘촘한 온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날의 우리 네 명의 온기는 불편하고 끈끈했고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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