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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Aug 30. 2023

자유롭게 떠나는 카라반 여행

이국적인 섬티아고


2박 3일 여행은 섬티아고에 가기 위한 길이었다. 유럽의 산티아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섬끼리 연결하여 길을 걷는 섬티아고는 전남 신안군 증도면 소악도에 위치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소악도, 신추도, 소기점도, 대기점도) 우리는 슬로시티 증도 우전 해수욕장에 자리를 잡았다. 해송 숲이 바람을 막아주고 고운 모래밭이 썰물 때는 아주 넓은 공간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나오는 불빛, 헤드라이트를 머리에 쓰고 조개를 잡으러 바다로 나온 사람들의 모습, 우리를 중심으로 모인 캠핑카 몇 대, 그리고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의 소리가 어우러져 이국적이면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침에 해변을 걸으며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품을 구경했다. 또 이곳은 태평 염전이 유명하다. 소금박물관에 가보고 소금 사탕, 소금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미네랄 듬뿍 소금도 샀다. 올해는 절임배추를 사지 말고 직접 배추를 절일까 무모한 생각을 잠깐 했다. 비가 많이 내려 아쉬웠는데 물부족으로 급수 제한이라는 현수막을 보고는 그래도 고마운 비임을 알고 아쉬움을 달랬다.








우선 섬티아고에 가기 위해서는 물때를 알아야 한다. "물때와 날씨"라는 앱에서 고조와 저조의 시간을 알려준다. 저조가 썰물이고 오늘은 오전 9시이다. 섬티아고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송공항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대기점도에 1시간 10분 걸려 도착한다. 송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병풍도까지 25분 걸려 도착한다. 증도 우전 해수욕장에서 송도 선착장까지 30분 걸릴 정도로 가까웠다. 배는 하루에 4번 왕복을 하고 가격은 어른 3천 원이며 차를 가져갈 수도 있다. 우리는 9시 배를 타고 9시 25분에 병풍도에 도착을 했다. 병풍도는 순례길이 아니다. 순례길의 시작인 대기점도까지 1시간가량 걸었다. 고흐의 그림 같은 풍경들을 보며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 대기점도가 보이는 곳에 노두길이 있다. 노두길은 옛날 육지와 섬을 연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직접 돌을 쌓아 만든 길이며 썰물에는 걸을 수 있다. 노두길을 걸으며 갯벌의 장경을 그대로 눈에 담았다. 수많은 짱뚱어, 조개, 게, 유유자작 아침을 먹는 새들 , 갯벌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 듯싶다. 새삼 우리가 망치고 있는 자연에 미안함을 느끼며 인간의 이기적인 교만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 길을 만든 옛사람들은 자연을 이기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먹이를 찾는 새처럼 우리도 먹거리를 찾아 자연과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순응하는 것 같다.









드디어 순례길 대기점도에 도착했다.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 소악도, 신추도를 걸으며 12 사도를 상징하는 집을 만나는 여정이다. 이곳의 주민들이 거의 기독교인들이고 여성 순교자 문준경이 살았던 곳이어서 순례길이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한다. 네이버로 검색했을 때 순례길을 3시간이면 걸을 수 있다고 했지만 5시간은 걸릴 듯싶고, 3시 고조, 밀물 전에 병풍도에 도착해서 배를 타야 하므로 전기자전거를 대여했다. 처음 만난 집은 베드로의 집이다. 건강을 상징한다. 송공항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이곳에도 도착한다. 바로 앞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다음 안드레아의 집은 생각하는 집이고 인상적인 고양이 동상이 있다. 이 섬은 주민보다 고양이가 더 많다고 한다. 우리가 자전거 경적을 울리자 고양이가 우리를 째려보았다. 우리 집 강아지만큼 이곳 고양이도 상전인 듯싶다. 야고보의 집은 그리움이고 벽에 에밀레종의 비천도가 그려져 있어 인상적이다. 요한은 생명 평화의 집이고 염소 동상이 있다. 병풍도에서 만난 염소가 떠올랐다. 염소도 섬사람들도 모두 느긋하다. 당연하다. 사람이 안달복달해도 자연의 시간은 정해져 있다. 밀물 썰물 시간대로 살 수밖에 없다. 여유에서 얻는 지혜는 뭔가 더 큰 것 같다. 필립은 행복의 집이다. 프랑스 남부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르톨로메오는 감사의 집이다. 쉼표 모양이고 배처럼 물에 떠 있다. 토마스는 인연의 집이다. 마테오는 기쁨의 집이고 러시아 정교회를 연상케 한다. 아고보는 소원의 집이고 유럽 어부들의 기도소에서 아이디어를 착상했다. 유다 다대오는 칭찬의 집이다. 시몬은 사랑의 집이다. 문이 없는 유일한 건축물이다. 사랑의 집인 만큼 사람들이 둘씩 사진을 많이 찍는다. 가롯 유다는 지혜의 집이고 프랑스 몽쉘미셀처럼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마지막 종을 울릴 수 있다. 이곳도 썰물 때가 아니면 갈 수 없다. 건축물 안에는 간단히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작은 창으로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게 한다.



































순례자가 아닌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일까. 종교는 나에게 항상 갈등과 실망을 준다. 이유는 종교도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실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감추려는 종교가 자꾸 나를 밀어낸다. 그저 신이 있다고만 생각하고 싶다. 신은 자연일까. 어제도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했고 비가 안 오니까 기도가 통한 느낌이다. 그러나 신이 아닌 자연이 만든 결과이다. 아무리 인간이 똑똑한 척 해도 자연 앞에서 잘난 척을 할 수 없다. 받아들이는 자세, 같이 공생하는 자세가 종교가 아닐까 싶다. 나는 책을 가지고 왔다. 천주교를 의지했던 엄마를 대신하여 순례길을 걷고 기도하는 장소에 책을 놓기도 했다. 남편은 말한다. 장모님이 편지를 간직한 시간부터 딸이 그 편지와 사연을 책으로 낸 시간까지가 모두 기적이며 종교라고. 어떤 말로도 슬픔을 위로받을 수 없다 아직도. 문득문득 또 슬픔의 늪에 빠질 때가 있다. 그냥 그렇게 살 것 같다. 예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가끔 일상이라고 착각하며 일상을 그리워하며 다른 일상으로 갈아탈 것 같다. 이곳 순례길에 다시 그리움을 가득 놓고 간다. 날이 좋을 때 또 오고 싶다. 섬 안에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나는 서울 사람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서울의 냄새가 배었을 것이다. 같은 서울 사람끼리 있을 때는 눈치를 채지 못한다. 시골 사람을 만나면 내가 서울 사람임을 느낀다. 서울쥐와 시골쥐 이야기도 아니고 참... 서울 사람, 시골 사람 어휘가 참 애매하다. 그들이 시골 사람이라 부르면 싫어하는 걸 안다. 근데 지방 사람도 이상하다. 나에게 동경의 대상인 시골, 그곳에 사는 운 좋은 사람들의 의미로 시골사람이라 부르겠다. 대기점도 자전거 대여소에서 웃음이 순박한 시골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병풍도에서 대기점도까지 이렇게 많이 걸을 거라 예상을 못해서 대기점도에 자전거 대여소가 문 닫았을까 엄청 걱정을 했다. 아, 저기 자전거 대여소가 보인다. 근데 사람이 없다. 어떡해, 저기 컨테이너 뒤편에 사람이 있다. 아주 느리게 걸어 나온다. 오늘 영업하시죠? 우리는 말했다. 어휴, 비가 와서 이렇게 길이 미끄러운데 자전거 타시게요? 아. 대여할 수 없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위험하잖아요. 우리는 괜찮습니다. 어제 오신 분들이세요? 아니요, 우리는 오늘 증도에서 왔어요. 아 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아주 심심하던 참에 우리가 온 것 같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면서 전기 자전거를 탔다. 물때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시간별로 움직여야 했다. 이곳은 전기자전거 5단으로 맞출 일이 없다던 시골 사람의 설명과는 다르게 우리는 언덕을 오르기 힘들 때는 5단까지 맞춰야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시간에 맞춰 배 타기 한 시간 전에 자전거 대여소에 도착했다. 서둘러 자전거를 반납하는데 시골 사람이 묻는다. 지금 가시게요? 네, 물때에 맞춰 나가야 배를 탈 수 있지요, 아까 선착장까지 1시간 걸었어요. 지금 가면 딱 맞아요. 걸어가시게요? 차로 태워드릴까요? 네? 아, 그럼 저희야 너무 감사하죠.

시골 사람은 남편에게 나이도 물어보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 어디 여행을 했는지 그리고 신안의 볼거리, 먹거리, 풍력발전소에 이어 어제 WHO가 코로나 팬데믹 종식 선언을 한 이야기까지 끝없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또 한 번 심심하다가 우리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 점이 서울 사람인 나와 다른 점이다. 나는 꼬치꼬치 묻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습관이 남을 배려하는 면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을 줄게 만든 부분도 있다. 시골 사람이 심심해서가 아니라 정말 우리가 궁금도 하고 우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말을 건 것 같다. 다리가 후들거렸던 우리는 너무나 편하게 선착장에 도착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전했다. 그는 말한다. 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무례함을 넘지 않고 따뜻함과 웃음을 짓게 하는 더도 덜도 아닌 균형의 관심, 뒤돌아 생각나게 만드는 매력적인 화법, 서울이 궁금하지만 시골이 좋다는 자부심 찬 표정, 나는 이래서 시골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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