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프롬>을 읽고

자유는 어렵다

by 하루달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은 프롤로그, 이선 프롬,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선 프롬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는다. 이십사 년 전의 충돌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는 말에 더 호기심이 생긴다. '나'는 발전소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스탁필드에 머물고 있다. 모든 말이 역병에 걸려 그는 이선 프롬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이선 프롬( Ethan frome)의 아버지는 건초를 걷어 들이다 말에 받혀 정신이 나가 죽고 어머니도 살짝 돌아서 갓난아이처럼 약해져 몇 해를 아프다 돌아가셨다. 그는 어머니를 같이 돌보던 지니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아내 지니도 병치레를 한다. 한때 공과대학을 다녔던 이선은 이렇게 세 명의 가족을 돌보며 슬프고 가난한 풍경의 한 부분처럼 살고 있다. 생명이 넘치는 마을의 기후와 같은 스물여덟 살의 이선은 무기력한 외적 상황에 놓여 있다. 어느 날 아내의 조카 스무 살 매티 실버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그녀를 돌보게 되었다. 아무 보수를 받지 않고 지니를 도우며 살기로 했다. 오로지 자연만이 이선에게 위안을 주고 있던 차에 매티는 그에게 또 다른 생명력 있는 삶을 주었다. 그러나 아내는 의사의 말대로 자신을 돌볼 하녀를 고용하는 대신 매티는 내보내기로 결심한다. 우유부단한 이선은 아내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매티와 이선은 둘의 사랑을 확인하고 썰매를 타고 자살을 하기로 결심을 한다. 그러나 둘은 죽지 않고 부상을 입는다.


에필로그에서 '나'는 이선의 집에서 두 여자를 만나게 된다. 쉰두 살의 이선은 아내 지니와 매티의 병간호를 하며 살고 있다.


이선이 바라는 행복은 단순했다. 누구나 하는, 꿈을 실현하는 것, 실패하든 성공하든 젊은 이의 열정을 이루는 것, 그러나 이선에게는 책임져야 하는 부모의 간호와 아내의 간호가 늘 가로막는다. 마치 스탁필드의 겨울 눈처럼 그를 꽁꽁 묶고 있다. 아내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혼자만 일하는 농장의 경제적인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노동의 가난함은 무한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나타난 메티는 젊고 아름답고 웃음을 지녔다. 아내가 의사를 만나러 가고 둘이 하룻밤 집에 있는 풍경이다.


"그가 들어서자 매티는 비켜서서 살짝 미소 짓다가 물 흐르듯 사뿐한 걸음걸이로 물러났다. 그녀는 초롱불을 식탁 위에 두었다. 식탁에는 갓 구운 도넛과 뭉근하게 끓인 블루베리와 그가 좋아하는 피클을 화려한 붉은 유리 접시에 담아 저녁 식사를 정성스럽게 차려 놓았다. 난로에 불이 이글이글 타올랐고 고양이가 졸린 눈으로 그 앞에 누워 식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선을 행복감에 숨이 막혔다."


이선은 드디어 불평등한 의무감에서 벗어나 집안의 안락과 평화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런데 아내는 둘의 관계를 눈치를 챈 것인지, 늘 소통이 되지 않는 아내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매티를 내보내야 한다. 착한 이선은 아픈 아내를 버릴 수 없다. 그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매티도 보낼 수도 없다. 둘이 도망칠 생각도 하지만 이선은 선조들의 무덤의 비문을 보게 된다. 이선은 유전적으로, 환경적으로 갇힌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인습, 윤리, 제도라는 집단적 압력에 맞서 인간의 자유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 죽는 것이 오히려 탈출인 노예의 삶이다. 이선이 느끼는 갈등은 실존의 인간이 느끼는 본능이다.


"매티를 위해 이선은 석탄과 불쏘시개를 가져오고 난로 청소를 해 주었다. 그동안 매티는 우유와 먹다 남은 식은 고기파이를 내왔다. 난로에서 온기가 퍼져 나오고 첫 햇살이 부엌 마루를 비추기 시작하자 이선의 음산한 생각들이 한결 부드러워진 공기 속에 녹아 버렸다. 그렇게 오래 아침이면 보았던 대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매티가 이제 영원히 이 장면의 일부가 아니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같았다."


하얀 눈이 주는 낭만은 일시적이다. 눈이 폭풍으로 변한다면 그보다 더 무서울 수 없다. 무더위, 추위는 사람을 죽게 만든다. 자연, 환경은 나약한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랑도 일시적이다. 뜨거웠던 남녀의 사랑도 식는다. 황홀한 행복감을 주었던 매티도 병을 앓고 나서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삶은 이렇게 우리에게 고통과 시련을 끊임없이 주는 것이다. 뜻하지 않는 사고와 이변으로 우리의 삶은 결정된다. 벗어날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부모가 아픈데 외면할 수 있는가. 사랑이 식었다고 과감히 떠날 수 있는가. 우리는 윤리라는 제도 안에서 살아간다. 구속을 하기도 하지만 관계적인 인간에게 보호막이 되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깊은 윤리를 제도가 아닌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이선 프롬을 우유부단하다며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선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냥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작은 행복을 위해 나를 희생할 수밖에 없는 자화상이다. 윤리를 스스로 지운 이선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최근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 아들의 여자 친구가 집에서 자고 간다는 말을 듣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나의 윤리적 가치관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만 남녀의 교제는 여전히 편견에서 보호받고 있다. 이선 프롬이 갇혀 있는 겨울의 눈보라처럼 나도 여전히 과거의 윤리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은 나의 생각은 갇혀있다는 말이다. 자유를 선택할지 말지는 여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1890년대 이 책이 불륜 책이라 비난받았지만 재평가되는 현대에서 불륜이라 느껴지지 않는 가치관의 변화를 보면서 역시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무기력한 당신에게 찾아온 매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의 요소는 이것이다. 이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우리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것을 소설은 말한다. 누구를 비난할 자격이 우리에게 없음을 알려준다. 단 세 명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낸 잔잔한 상황이 큰 파장을 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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