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심심한 아이는 구덩이를 판다. 동생이 와서, 친구가 와서, 아빠가 와서, 엄마가 와서 묻는다. 뭐하냐고 묻기도 하고 같이 하자고 제안도 하고 서두르지 말라고 충고도 한다. 아이는 열심히, 혼자 깊숙한 구덩이를 만든다. 그리고 구덩이에서 바라본 하늘은 더욱 파랗다고 말하고 다시 흙을 덮어 구덩이를 메운다.
왜 아이는 구덩이를 팠을까? 아이에게 구덩이는 어떤 의미일까? 심심해서 파기 시작한 구덩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혹시 함정을 만들거냐는 친구의 말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아들이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친구와 열심히 삽을 가지고 땅을 팠던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하기 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엄청나게 큰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한 번 구덩이를 만들면 중독되나? 아이들은 왜 파는 것일까? 아들은 그 위에 잎사귀를 덮어 함정을 만들거라고 좋아했다. 그림책의 아이는 함정은 안 만든다고 한다.
동생이 와서 연못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싫다고 한다. 그냥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아빠는 찬찬히 구덩이를 보더니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아빠도 한 번 쯤 구덩이를 판 적이 있는가 보다. 노하우를 알려준다. 근데 왜 서두르면 안되나? 빨리 파는 구덩이는 재미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또는 서두르다 보면 망가지기도 하고 애벌레를 만나도 못 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 보는 여유가 사라질 것 같기는 하다.
구덩이는 자신을 직면하는 공간이다. 딱 자기 몸 크기만한 구덩이 속에서 만난 애벌레는 아이 자신이고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 성장하는 공간이자 자아를 찾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직면한다는 것은 자신의 아픔, 잘못, 상처 등을 바라보는 것이고 이 시간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자아 성찰을 하는 과정이 구덩이를 파는 행위와 비슷한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땀을 흘리기는 하지만 너무나 쉬워보이고 재미있어 보인다. 자신을 직면한다는 것은 고통이 따르지 않나?
구덩이는 무엇인가? 구덩이는 통상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구덩이는 세상에 모든 쓸데없이 여기는 하찮은 무언가가 아닐까? 사회에서 생산적이지 않는 불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취미 활동도 먹고 사는 데는 필요가 없다. 예술도 먹고 사는 데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어른들은 아무 필요도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혼낸다. 멍 때리는 시간, 마음이 꽂혀서 하는 모든 일이 구덩이가 아닐까? 그리고 그런 구덩이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림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주변의 사람들이다. 구덩이를 판다고 혼내는 어른도 없고 방해하는 친구들도 없다. 인정해주는 시간동안 아이는 땀을 흘리며 성찰을 했든, 자신과 직면을 했든, 스트레스를 풀었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해맑게 구덩이에서 바라본 하늘이 푸르다라고 말한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이 정리가 된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구덩이에 빠질 수 있어서 배려한 것일까? 아이는 흙으로 구덩이를 메운다.
나에게 소중한 구덩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