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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Jan 04. 2022

검사받지 않아도 되는 독서감상문

다비드 칼리의 <적> 그림책






왜 전쟁을 하는가?

적은 잔인하고 일말의 동정심도 없기 때문에 우리를 죽일 것이고 우리를 죽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적을 죽여야 한다. 이것이 전쟁을 하는 명분이다.

"나"는 동정심도 있고 여자와 아이들, 동물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인간이다. 그러나 적이 먼저 전쟁을 포기해야 나도 총을 쏘지 않을 것이다. 적을 죽여야 전쟁은 끝난다.

전쟁 명령을 내린 자들은 화려하다. 훈장이 겉옷에 치렁치렁 매달려 있고 별 다섯개가 빛나고 왕관, 전리품도 보인다.




두 참호에는 두 적이 대치한다. 적대감과 의심과 증오심을 참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칼과 총을 겨누었다가 모두 죽고 두 명만 남았다. 그리고 그 중 누가 남느냐에 따라 전쟁의 결과는 판명된다. 하찮고 덧없는 명예는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서로를 견제하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비를 맞고 추위에 떨며 참호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 서로 죽기만을 기다린다. 어느 날 위장을 하고 참호를 빠져 나가 적의 참호를 공격하려고 한다. 앗, 적이 없다. 적도 위장을 하고 나의 참호로 간 것이다. 둘은 서로의 참호에 또다시 갇히고 말았다. 적인 그는 여자와 아이들과 동물들을 함부로 죽이는 사람이 아니고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전쟁 지침서는 나의 것과 똑같다. 지칠 대로 지친 둘은 손수건에 " 이 순간부터 전쟁을 끝낸다" 메시지를 적어 병에 넣고 서로의 참호를 향해 힘껏 던진다.




정말 적이 있었을까? 내가 총을 한 방 쏘면 적도 한 방 쏜다. 내가 저녁을 먹기 위해 연기를 피우면 적도 연기를 피운다. 내가 지침서를 읽으면 적도 읽는다. 내가 참호에서 벗어나면 적도 참호에서 나온다. 내가 화해의 유리병을 던지면 적도 던진다. 적이 맞나? 나의 거울과도 같다. 지침서에서 알려준 적은 적이 아니었다. 잔인하지도 않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는 또 다른 사람이다. 나는 처음부터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적은 참호같은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의 닫힌 생각이자 환상이다.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적이 잔인한 행동을 한 적을 본 적도 없으면서 적대감을 가질 때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의심과 명령에 대한 의구심 없는 자유롭지 못한 나의 세뇌당한 모습이다. 나는 무엇이 불안한 것인가, 왜 명령자들의 말을 믿은 것인가.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명분이 필요하다. 그 명분은 이기심에서 나오기도 하고 소수에게 이익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대중은 자신의 불안과 이익을 위해 동참하기도 하고 방관하기도 한다. 전쟁은 가치가 있는 것인가. 왜 미워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미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진정한 적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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