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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Jan 20. 2022

검사받지 않아도 되는 독서감상문

<All is true> 영화를 보고





 정말 신기하다. 폭염이 며칠 가는 한여름에도 등이 시려 견딜 수가 없던 나였는데 이제 등이 시리지 않다. 등이 시려 무려 조끼를 3개나 장만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흐르는 한 줄기의 땀방울처럼 등에 스며드는 그 차가운 한기는 목덜미에서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 온 몸에 소름을 끼치게 하고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뱉는 한숨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등으로 흐르는 듯했다. 한숨을 쉬고 다시 등이 시려서 몸을 떨고 옷을 두 겹 겹쳐 있고 "등이 시려"라는 말을 내뱉었다. 여전히 그 조끼들을 입고 겨울을 나고 있지만 지금 등이 시리지 않다. 삼년상을 치른 나의 현재 모습이다. 겨우 3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변화가 찾아오다니 내 자신이 가증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애도의 시간을 잘 견디고 있나 싶기도 하고 엄마가 잘 떠나고 있는 중인가 안심이 되기도 하다. 여전히 마음은 아프다고 생각했지만 작은 변화가 온 듯하다.






 나는 대체로 고통이 찾아오면 회피한다. 잠시 도망가거나 영원히 숨기도 한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돌이켜보면 3년동안 나는 아주 바쁘게 살았다. 일을 하고 대학원에 다니고 독서모임을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나의 텅빈 허전한 마음을 보호하겠다고 밖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살림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일이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밥을 지어 배불리 먹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눈물이 났다. 죄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육체의 행복은 망자에게 미안한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남편은 살림을 자연스럽게 맡았다. 서툰 실력은 나의 영역을 낯선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배불리 먹는 식구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말이 제일 듣기 싫은 소리였다. 위로도 아닌 이기심으로 가득 찬 쉬운 말이다. 왜 산 자는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라는 말은 없고 그냥 살라고 하나. 목숨은 소중한데 그냥 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죽은 자를 잊으라는 서운한 말로 들렸다. 두 다리로 걸어가는 엄마 연배의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걸어다니는 그들이 부러웠다. 어디가서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 문뜩 문뜩 생기면 미칠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은 누구를 공격하고 싶기도 했다. 남편을 미워하기도 하고 펜으로 나를 공격했다. 무심한 딸인 나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터져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나의 마음을 위로해준 노래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주저하는 연인을 위"노래를  듣고 오열하기도 했다. 그러나 듣고 또 들었다. 지겹지가 않았다. 천천히 이별하자는 가사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듯 위로와 평안함을 주었다. 등이 시리지만 나는 산 자이므로 살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을 찾으려고 읽은 책은 아니지만 읽다보니 위로가 되기도 했다. 우연히 본 "All is true" 영화 속의 글귀가 마음에 와닿아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한 여름의 열기를 더는 두려워 말라.
사나운 겨울의 폭풍도 두려워 말라.
그대는 속세의 과업을 끝냈도다.
집으로 돌아왔도다.
품삯도 받았도다.
빛나는 청년과 처녀 모두 굴뚝 청소부처럼 돌아가리라





엄마가 받은 품삯을 생각해보고 아름다운 청년 아빠와 빛나는 처녀 엄마의 재회를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보았다. 죽은 셰익스피어의 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말한다. 이제 나의 이야기는 완성이 되었다고, 이제 쉴 수가 있다며 떠난다. 아들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진실을 알게 된 아버지, 진실을 숨기고 산 자들을 위한 선택을 한 어머니, 늘 죄책감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누나들 모두 각자의 이야기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에 있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다. 각자의 몫을 살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







업어준다는 것

박서영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나는 엄마를 3년동안 업고 있었나보다. 시처럼 나는 엄마의 숨결을 듣고 엄마의 울음을 나의 몸으로 받아들이며 업고 지냈나보다. 처음으로 입장이 바뀌어 엄마를 업어준 나는 엄마의 진실을 듣고 뒤돌아 엄마와 눈을맞추고 나와 함께한 엄마의 인생을 정리해주고 있었나 보다. 아니 엄마와 함께한 나의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나 보다. 그 과정은 고통과 아쉬움 가득한 슬픔의 시간이었다. 수많은 인연들로 엮인 엄마의 시간 보따리는 무겁고 애잔했다. 그래서 시렸나보다. 엄마의 보따리가 가벼워진 이유는 그동안 나의 슬픔을 지켜봐준 수많은 고마운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은혜, 세상의 모든 음악, 글, 아름다운 자 덕분이었다. 이것이 내가 더이상 등이 시리지 않는 이유인가 보다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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