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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Nov 24. 2022

영화 <패터슨>을 보고

그의 아내처럼 살기



<패터슨> 영화는 굉장히 잔잔하지만 나에게 큰 파장을 일으킨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나의 취향에 딱 맞는 영화이다. 버스 운전사 패터슨은 패터슨 시에서 살고 있고 시를 쓴다. 그의 아내는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보내고 주말에는 직접 구운 빵을 시장에 나가 팔기도 한다. 당연히 패터슨이 주인공이다. 패터슨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시로 쓰는 장면이 아름답고 화면에 띄운 그의 시는 굉장히 좋다. 그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공책에 시를 쓴다. 아내는 그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시를 복사하고 출간하기를 원한다. 그는 마지못해 알았다고 하지만 강아지가 그의 공책을 모두 찢어 시는 사라진다. 그가 시를 바라보고 시를 느끼고 시를 쓰는 모습이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 작가들에게 큰 인상을 남길 것 같다. 아, 시는 저렇게 즐기는 거구나 감탄이 나온다.



나는 부수적으로 그의 아내에 눈길을 둔다. 같은 여자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집에서 혼자 지내는 모습은 새로운 자극을 준다. 검은 치마에 흰 물감을 칠하고 집안의 가구에 색을 넣고 머핀을 굽는 모습이 아름답다. 가정주부 타이틀에서 나를 위한 오롯한 시간을 주기적으로 보낸 적이 없는 나는 그녀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면서 부러웠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의 존재에 무게를 싣고 명분을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그냥 아내로, 나로 살 수 있었는데 굳이 명분이 필요할 만큼 자신이 없었을까. 오로지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더 컸을 것이다. 남편은 나가서 일하고 아내는 집에서 가정일을 하면서 역할 분담을 하고 저축도 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그러는 동안 자꾸 부모의 역할만 남고 미래의 준비만 하면서 남편과 아내, 현재의 나 자신이 없어진 것 같다. 가까운 지인 중에서 아이가 없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 매번 만날 때마다 아직도 정체성을 못 찾고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며 힘들어한다. 나도 그녀였다면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그녀처럼 엄마, 아내로의 역할 말고 나 자신의 존재에 무슨 죄라도 진 것처럼 행동했을 것 같다. 그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야겠다.



나는 남편에게 일하는 환경 말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먼저 물어본 적이 있는가. 버스 운전사가 시인이 되듯 회사원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한데. 요즘 남편은 꿈이 생겼다. 대학 교수가 되고 싶어 주말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러나 정말 꿈이 맞는지  생계를 위해 노후를 위한 선택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본인은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지만  그래 보여 적극적인 응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도 이제야 꿈을 꾼다. 아이들이  크고 작가라는 꿈을 꾸어본다. 우리는  영화 , 패터슨과 아내처럼 살지 못했을까. 잘하려고 너무 애써서인가. <애쓰지 않아도> 소설이 주는 위로, <패터슨> 영화가 주는 여운을 생각해본다. 이제부터라도 하루를 오롯이 나로 살아보자. 마치 시처럼. 평가받지 않는 , 아주 사적이면서 루틴이 나를 위해 돌아가는 일상을 즐겨보자. 김장을 마치고 잔나비 공연 가기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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