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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Jul 25. 2022

아빠의 다이어트

아빠는 요즘 다이어트 중이다. 사실 아빠는 키에 비해서 무척 마른 편이지. 그런데 왜 다이어트냐고? 아빠에겐 숨겨진 뱃살이 있단다. 내장지방들이 아빠의 배를 무단 점유하고 마치 자기 집인양 뻔뻔하게 살림을 차린 지가 어언 10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물론 아빠도 이 지방들을 내쫓으려고 하지 않은 건 아니야. 2020년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솟아오르면서 위기감을 느꼈고, 열심히 운동해서 거의 추방까지 갔었어. 하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단다. 그때 이후로 조금 주춤하긴 했는데, 최근 2년 동안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와 버렸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다시 올라와서 요즘 또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그때와 지금 다른 것이라면 바로 네가 있다는 것이지. 태어날 너와 좀 더 힘차고 재밌게 놀아주기 위해서라도 운동은 지금 아빠에게 꼭 필요한 것이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너에게 아빠의 매끈한 복근을 꼭 보여주고 싶기도 하단다. 너에게 보여줄 아빠의 모습을 이야기하다 보니 한 가지가 더 있구나. 아빠가 요즘 빼고 있는 것은 뱃살뿐만이 아니다. 바로 머리카락도 빼고 있지. 물론 이건 아빠의 의지로 빼는 것은 아니야. 유전이라는 것인데, 너와도 매우 관련이 깊단다. 하여간 슬픈 이야기니까 짧게 하마. 아빠의 머리카락도 요즘 다이어트 중이다. 약을 먹으면 조금 느려지긴 한다고 하는데, 네가 태어나기 전에는 약을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네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이유가 하나 늘었네.


너에게 보이는 아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농담 삼아 이야기했지만, 중요한 부분이지. 물론 네가 아빠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아빠도 아주 어릴 때 바라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거든. 몇몇 사진으로 본모습만 기억날 뿐이야. 근데 말이다, 요즘 세상은 어디든 카메라가 함께 하는 세상이잖니. 네가 나중에 한 장씩 넘겨 볼 사진들에 이왕이면 멋진 모습의 아빠가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단다. 그러니까 운동도 열심히 해서 뱃살도 빼고, 약도 먹어서 풍성한 머리숱을 유지해야지. 우와 아빠 이때는 날씬하고 머리숱도 풍성했네?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니?


날씬하고 머리숱도 풍성한 외적인 모습과 더불어서 또 내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요즘 들어 부쩍 생각이 많아지고 있어. 다정한 아빠가 좋을까? 아니면 조금 엄격하더라도 예의와 범절을 중시하는 아빠가 좋을까? 요즘 유행하는 친구 같은 아빠도 괜찮은 거 같은데? 그런 생각들 말이지. 특히나 아빠는 조금 엄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금은 너에게 늘 친구 같고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 근데 또 재밌는 것은 정작 할아버지는 너무나 다정하고 친구 같은 증조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아빠를 엄하게 키우셨다는 거야.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선택 장애가 올 것 같다.


지금의 아빠는 너에게 좋은 대화 상태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단다. 아빠는 늘 섬세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아빠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러지 못했지.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내용을 공부해야 했단다. 모두가 선호하는 학교와 직업을 가져야 했지. 그러다 보니 아빠가 하는 생각들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이런 아빠의 모습을 알았지만, 현실의 제약을 이겨내시지는 못했거든. 아빠는 너에게만큼은 그런 감정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규칙이나 질서를 모두 무시해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 우리는 어느 정도 상식과 공감대 속에서 살아야 하는 구성원이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해의 폭보다는 좀 더 넓은 폭으로 너를 안아주고 싶다.


20년 뒤 너에게 아빠는 어떤 사람이 될까? 그리고 너는 아빠를 어떤 사람으로 바라보게 될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그동안 아빠가 생각하던 것들을 많이 내려놓게 돼. 어린 너에게 아빠가 어떤 회사를 다니고, 얼마나 좋은 차를 타고, 얼마나 좋은 집에 사는가가 중요할까? 되려 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너의 감정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상대가 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바쁜 하루하루 속에서 아빠가 부여잡고 살던 것들이 별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다이어트인 셈이지.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여러 가치들을 다시 정리하는 것 말이야. 아빠는 요즘 여러모로 다이어트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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