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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Nov 04. 2022

만성 비염 환자인 아빠의 기도

비염은 닮지 마라

진지한 이야기라 궁서체로 씁니다. ㅋㅋ


저는 만성 비염 환자입니다. 늘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사실 이게 힘들다는 생각을 그렇게 심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태어난 다음부터 늘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독 비염이 심하거나, 재채기가 날듯 말듯한 그 간지러운 순간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는 가끔 코를 잘라버리고 싶다는 섬뜩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주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보다는 견딜만합니다. 하지만 이런 비염환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감기에 걸렸을 때입니다.


안 그래도 콧물이 줄줄 흐르는 인생인데, 감기까지 걸려버리면 정말 감당이 안됩니다. 장마철 팔당댐 방류하듯 콧물이 줄줄 흐릅니다. 특히 요즘처럼 마스크까지 끼고 있는 시국에는 이게 정말 곤혹입니다. 콧물을 매번 풀어야 하다 보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시간보다 턱에 걸치고 있는 시간이 훨씬 더 깁니다. 코를 계속 풀다 보면 코 주변이 헐기도 합니다. 따끔거리고 건조하고 그렇습니다. 혹시나 해서 로션 성분이 섞여 있다는 티슈를 몇 배나 더 비싼 가격을 주고 사보기도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로션을 사서 바르는 게 나으니 비염환자분이 보고 계시다면 참고하세요.


 불편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때입니다. 직장에서 십 분에 한 번꼴에 에취 거리는 소리를 연달아 내면 좀 민망하긴 합니다. 게다가 코 푸는 소리도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래서 재채기 날 때마다 화장실로 가기도 했는데, 그것도 할 짓이 아니긴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내려놓았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확실히 더 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재택을 하고 싶기도 했는데 망할 회사가... 아 여기는 회사 이야기를 쓰는 매거진이 아니네요. 참겠습니다. 그래도 콧물과 휴지 범벅의 인생을 말없이 따뜻하게 안아주는 와이프가 있어 다행입니다.


비염은 유전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재채기 소리를 BGM처럼 듣고 자랐습니다. 체온이 조금이라도 낮아지는 찰나에는 어김없이 아버지의 재채기가 있었고, 바로 뒤를 이어서 저의 재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세상만사 다 포기한 표정으로, 참 가관이다~~ 하시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더블 재채기를 위로하고는 했습니다. 아버지는 본인도 해결하지 못한 비염임에도 저에게 이것저것을 권하시곤 했는데 사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인가 봅니다.


체감보다 무서운 것이 역체감이라고 합니다. 좋은 스피커를 들으면 그때는 잘 몰랐다가도, 집에 돌아와서 음악을 들으면 옛날 80년대 라디오 듣는 것 같이 체감이 확 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의 비염에도 그런 역체감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중동에 갔을 때였습니다. 직장 생활 때문에 일 년 반 정도 중동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따뜻한 나라에서는 재채기 한 번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콧물이나 코막힘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소중한 지를 몰랐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인천 공항에서 재채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지요.


저는 어지간하면 약을 먹지 않습니다. 약을 먹으면 당장은 좋아지지만 당연히 내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비염 약이 그렇게 몸에 좋지도 않고요. 비스테로이드 성분의 약은 부작용은 적다고 하지만 효과도 적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타고난 체질인데 그냥 적응하고 살자 주의입니다. 한때 열심히 코에도 스프레이를 뿌리고 약도 먹고 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셈입니다. 탈모도 곧 그렇게 되겠지요. 아무튼 이런저런 정황을 다 고려해보면 저는 이제 온몸과 마음으로 비염을 받아들이고 저의 일부로 인정한 셈입니다. 마치 예전 한 드라마에서 암도 생명이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염이 제 자식에게만큼은 전달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제가 재채기를 두배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콧물을 매번 직수 정수기처럼 흘리고 다녀도 좋겠습니다. 저의 아이가 매번 이렇게 비염을 달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구립니다. 얼마 전에 아이가 쓸 콧물 흡입기를 핫딜로 샀습니다. 이게 굉장히 유명한 제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와이프가 저의 비염을 유심히 보더니 팁만 교체하면 아빠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절했습니다. 아이와 아빠가 같이 콧물이나 빼고 있는 것이 영 불쾌합니다. 물론 아이의 콧물은 비염과 무관하지만 괜히 부정탈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괜히 자존심이 상합니다.


좋은 것만 줄 수 있겠습니까. 유전도 상속처럼 재산은 받고 빚은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이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처럼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비염뿐이겠습니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의 마음속에 수많은 나쁜 습관들도 아이의 마음속으로 고스란히 전달될 것입니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지요.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 아이는 그것들을 현명하고 슬기롭게 긍정적으로 이겨내기를 바랄 뿐입니다. 힘듦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 이면에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빠가 비염 외에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태도라는 생각을 합니다. 따라서 배우는 아이들에게 제 스스로가 먼저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저부터가 가져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비염도 장점이 많습니다. 음. 먼저. 음. 아무래도 찾기가 힘듭니다. 비염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가을이 오는 것을 빨리 알 수 있다 정도의 쓸데없는 장점 하나가 있겠네요. 크리넥스 주식이 있나요? 그렇다면 주가 상승의 긍정적 요인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아 또 하나가 있네요. 보잘것없지만 이런 글 하나를 쓸 정도의 글감은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뭔가를 주기보다, 스스로 먼저 노력하는 삶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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