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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Nov 03. 2022

서로 사랑하라

출산을 앞두고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아이와 함께 할 날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상상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아주 넓은 잔디밭에서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도록 하는 것이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깊은 그림자를 남기고, 낮은 각도 덕분에 햇살은 그리 밝지 않고 오렌지 필터를 씌운 듯 세상에 대조를 더하는 풍경 속에 나의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아장아장 잔디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벌써 웃음이 지어진다.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느낌이 들 것 같다.


또 하나는 같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시골 어느 한한 국도, 그리고 숲이 울창한 고갯길을 말없이 오르는 것이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힘든 기색을 숨기기가 어렵다. 헉헉 거리는 숨소리 외에 그 어떤 대화도 없이 둘이서 그저 오랫동안 오르막을 오르고 싶다. 힘들지만 이 힘듦을 함께 이겨내고 있다는 뜨거운 동지애를 함께 나누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와이프와도 그랬고, 곧 태어날 아이와도 그럴 것이다.


마지막은 어쩔 수 없이 나의 퇴근길 상상이다. 간신히 걷는 나의 아이가 아빠의 퇴근을 반기기 위해 평소 몸과 같이 여기던 장난감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아장아장 걸어서 현관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조막만한 손으로 아를 움켜쥐면서 자신의 온몸을 다해서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끼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내가 그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 존재일까. 마음이 복잡하지만 그것은 결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여러 어려움을 동반하는 일이지만, 앞서 언급한 상황을 생각하면 그런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이 오랜 유전자의 역할인지, 혹은 동물 고유의 기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세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본질은 사랑을 줄 수 있음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 어떤 사회, 경제, 정치적인 논리와 명분이 없이 그저 순수하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경험을 아이를 통해서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아이가 순백색의 마음으로 그 사랑에 보답하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 즐겁고,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뜨겁고, 서로를 껴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나에겐 그런 사랑이 둘이나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것이 꼭 둘일 이유는 없다. 세상 모든 것들에 나가 이런 사랑을 보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일 것인가. 그러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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