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5분대

자전거는 멘탈 싸움

by 배경자

서울에는 남산이라는 유명한 업힐 코스가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의식 같은 곳이다. 당구 치는 사람들은 300 이하 맛세이 금지를 외치고, 헬스 하는 사람들은 3 대 500 이하 언더아머 금지를 외치듯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남산을 몇 분에 오르느냐가 일종의 전투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사실 자전거라는 것이 여러 가지 라이딩 유형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한 가지 기준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파워만 하더라도 FTP라는 용어를 써가며 1시간 유지 가능한 최대 파워를 산정하긴 하지만, 실제로 라이더의 체중에 따라서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가 불가능하다.

파워는 대체로 체중과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파워가 높다. 반면에 왜소한 사람들은 파워가 낮다. 그러니까 평지에서는 체중이 많이 나가면서 파워가 높은 사람들이 무조건 빠르다. 그런데 오르막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르막에서는 체중이 저항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파워가 작더라도 체중이 가벼운 사람이 더 빠른 경우가 있다.

사실 완벽한 평지만 달리는 경우는 현실에서 잘 없고, 산악지형이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대부분의 코스에서는 업힐이 포함된다. 따라서 단순 파워만으로 실력을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Watt/kg으로 수준을 비교하는 방식이 주로 쓰인다. 파워를 체중으로 나눈 값으로 업힐에서는 비교적 정확한 값. 물론 평지에서는 절대 파워가 높은 사람이 빠르지만, 대체로 드래프팅을 통해 공기저항을 피해서 뒤에 붙어가면 절대 파워의 이점이 상쇄되기 때문에 이래저래 이 값을 실력의 기준으로 친다.

그럼 Watt/kg만 알면 서로의 실력을 줄 세울 수 있냐. 또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파워커브라고 불리는 그래프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는데, 한 시간을 동일한 Watt/kg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힘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전혀 다른 퍼포먼스가 난다. 평지에서 순간적으로 큰 힘을 내는 스프린터와 꾸준한 파워를 오래 내는 클라이머를 비교해보자. 둘의 Watt/kg이 같다고 해도 코스의 구성에 따라 둘의 퍼포먼스는 크게 차이가 난다.

긴 오르막이 있는 코스에서는 꾸준한 파워를 오래 내는 클라이머가 유리할 것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낙타 등에서는 순간적인 파워가 높은 스프린터가 좀 더 유리할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또 실제 외부 환경이나 같이 타는 라이더들과의 상호작용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실제 사이클링은 단순한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스포츠가 된다.

다시 돌아와서, 남산은 이런 상황에서 가장 단순하게, 하지만 생각보다 직관적으로 서로의 실력을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지표이다. Watt/kg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오르막 코스이지만, 10분 이내에 오를 수 있는 짧은 오르막이기 때문에 클라이머나 스프린터 모두에게도 크게 유불리가 없는 코스. 게다가 접근성이 좋아 자주 오르게 되니 코스 숙지가 잘 되어 있어 기록 측정에서 변수의 발생이 적다.

내가 가지고 있던 남산 PR은 6분 중반. 동호인 중에서는 어느 정도 타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급 동호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몇 년 전, 한창 자전거 많이 타고 설악까지 다녀온 직후에 세운 기록. 당시 앞에 다른 라이더들이 지속적으로 있어서 추월하면서 페이스 메이킹이 잘 되었기도 했고, 몸도 한창 올라와 있을 때였다. 무거운 알루미늄 자전거 타고 오른 기록인데, 그 뒤로 고오급 카본 자전거로 기변하고 나서도 이 기록을 넘지 못했다.

올해 자전거를 다시 조금씩 타면서 세운 목표는 남산 5분대. 5분 59초보다 빠르게 들어오면 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동호인 중에서는 어디 가서 꽤 탄다고 말할 수 있는 기록. 물론 현재 동호인 및 일부 선수들의 최고 기록은 4분 초반이지만, 이건 노력도 노력이지만 타고난 신체 조건이 충족되어야 달성되는 값이라 감히 넘보지 않기로 했다. 나의 비루한 몸으로는 노력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는 5분 대인 것 같다.

올해 들어 체중도 좀 많이 감량했고, 집에서 로라도 살살 굴리면서 파워도 키우고 하다 보니 제법 실력이 늘었다. 특히 워크아웃에 재미가 들린 게 컸다. 장마철에 집에서 꾸준하게 워크아웃 돌렸더니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였다. 1시간 지속 가능한 최대 파워도 올 3월 180에서 8월에는 244까지 늘었다. 물론 초기화된 몸이 다시 올라오는 측면도 있었지만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장마가 그치고 나서, 그동안 좀 저렸던 안장을 바꿔볼까 하고 한남동 습샬 매장에 갔다가, 테스트용 안장을 달고 남산으로 향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5분대를 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안 했다. 대충 나의 Watt/kg으로 계산해보니 남산을 약 6분 중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렇다면 과거 PR을 잘하면 깰 수 있을 정도의 기록. 그 정도 생각을 하면서 남산을 올랐다.

약수터에서 출발하는데 몸이 꽤 가벼웠다. 막상 달리니까 또 욕심이 나서 열심히 밟았다. 허벅지가 뻐근하고 무거웠는데, 집에서 워크아웃하면서 많이 겪었던 상황인지라 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급경사에서는 댄싱으로 좀 근전환을 하고 경사가 낮아지면 재빨리 시팅으로 전환해서 페달 속도를 올렸다. 중간중간 힘든 순간들이 많았는데 의외로 집에서 워크아웃한 것들이 도움이 됐다.

대망의 마지막 직선 구간. 이미 허벅지는 다 털렸는데 그래도 힘을 냈다. 내가 집에서 그동안 그렇게 힘들게 워크아웃을 돌렸는데, 지금 이 몇 초를 못 참아서 페달을 멈추면 무슨 소용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은 못 움직일 것 같은 허벅지에 또 힘이 났다. 자전거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멘탈이다. 그리고 멘탈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힘들게 연습하는 것이다.

결과는 6분 5초. 6분 중반이나 나올까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빠른 기록이 나왔다. 올해 목표에 6초 모자라는 기록. 기록을 보니까 또 아쉬움이 올라오긴 했다. 신기한 것은 파워와 체중, 그리고 오르막의 경사도와 같은 숫자로 계산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기록이 나왔다는 것이다. 바람도 역풍이었는데.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자전거는 스포츠다. 숫자로 표현하기 힘든.

인도어 트레이닝만 하다가 아웃도어 스포츠를 하고 나니, 또 그 재미가 있다. 인도어에서 힘들게 키운 실력으로 아웃도어에서 열심히 퍼포먼스 내는 것도 자전거를 즐겁게 즐기는 방법인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올해 안에는 꼭 남산 5분대를 들고 싶다. 이번에 못하면 한동안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날 이후로 워크아웃도 좀 뜸해지고, 식단 조절도 훨씬 나태해졌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조금 더 노력해서 날이 쌀쌀해지기 전에 꼭 5분대를 달성해야겠다.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은 정말로 아름다운 일이다. 스스로를 이겨내면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건강해진다. 날카로운 마음은 되려 너그러워지고. 예전엔 몸 좋은 아저씨들 보면 그냥 그랬는데, 지금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한계를 극복했을까 생각하면 존경심이 생긴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라면 규칙적인 운동은 행복을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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