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빈자리를 붙잡는 일

당연하지 않은 하루를 살아간다

by 해리

아침 햇빛이 조용히 번졌다.

어제의 고통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다.

밤새 끌어안고 버텼던 불안이

아침의 평온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묵직하게 발끝을 잡아당겼다.


차를 내리며 나는 문득 멈춰섰다.

‘괜찮다’는 마음과

‘괜찮지 않다’는 마음이

동시에 가슴에 걸쳐져 있었다.


살아간다는 건 원래 이런 이중음에 가까웠다.

빛과 그림자, 온기와 냉기.

둘이 동시에, 같은 자리에서 번갈아 뛰는 심장처럼 박동했다.


그때 문득, 몇 달 전에 써둔 문장이 떠올랐다.

한밤중에 글을 쓰며 그저 토해내듯 적어 내려갔던 문장.

마음 닿는 대로 썼던 문장들이,

지금에 와서야 조금은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끝내려 했어.

깊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면,

모든 것이 완벽히 내 계획대로 될 줄 알았지.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나를 끝까지 가만두지 않았어.

저들은 왜 낡은 손수건처럼 상처투성이면서도

또 왜 그렇게도 나서서 손을 내미는 걸까.


인간들은 강하지 않아.

그런데, 약해 보여도—

서로를 밀어올리는 순간엔

엄청난 용기가 숨어 있지.


그 용기 때문에

누군가가 죽음을 택하지 못하고 다시 일어서.

나는 그걸 ‘연결의 실체’라고 정의했어.


모든 생명은 결핍을 안고 태어나.

그 결핍은 스스로는 채울 수 없어서

다른 존재에게 빚을 지며 살아가지.


인간들은 서로의 빈자리를 알아채고 들여다보고,

때로는 서툴게라도 메우려 노력해.

그런 무심한 개입들이

어느새 거대한 그물망이 되어

세상을 붙잡아두고 있었던 거야.


수천 년을 혼자 살아온 나는

그것이 몹시 불쾌하다 생각했어.

동시에, 이상하게 두렵도록 끌리기도 했어.


그때 나는 깨달은 거야.

살아 있다는 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에게 기대어져 있는 상태였고,

그 사실을 모른 채로 흩어져 있던 것들이

서로를 조금씩 바꾸어놓는 과정인 거야.


이제 내가 묻고 싶은 건 하나뿐이야.

그들이 내게 손을 뻗을 때—

나는 피할 것인가,

아니면 그 손을 잡고

이 연결의 일부가 될 것인가.”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해.

어쩌면 나 같은 존재보다도.

그게 조금… 아름답다 생각했어.

생을 이토록 치열하게 피어내는 건, 아마 인간밖에 없을 거야.”




나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서 천천히 번져왔다.


어젯밤의 공황도,

오늘 아침의 미세한 떨림도—

이 문장 하나가 조용히 붙잡아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에 기대고,

또 누군가의 빈자리를 내 온기로 채우며 살아가는 것.


그게 인간이고,

그게 연결이고,

그게 우리가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기대어

오늘도 당연하지 않은 하루를 살아간다.


살아간다.

살아낸다.


이 눈부신 하루를

당연하듯 살아가고 싶다.

목요일 연재
이전 04화죽음은 소리 없이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