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글쓰기라는 하나의 사건
아마 20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솔직 담백하게 글을 써본 것이. 대학교 입시용으로 장황하게 휘갈겨 쓴 영어 에세이나 입사지원서 같은 판타지물은 예외로 해두자. 너무 많은 과장과 ‘사실에 근거한 허구’로 범벅되어 있어서 글쓰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시기한 부분이 있으니까.
학창 시절 학교에서 내주던 일기 쓰기 숙제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일기 따위는 항상 한두 줄 대충 휘갈겨 쓰고 축구하러 운동장으로, 게임하러 PC방으로 달려가는 전형적인 돌쇠 스타일 어린이였다. 그렇다. 나는 글쓰기나 문학 소년 같은 부류와는 도무지 공통분모를 찾아볼 수가 없는 그런 아이였던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른이 되어서도 글쓰기를 멀리했다. 남들 다 하는 블로그나 페이스북 포스팅도 잘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나 자신의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 풀어내는 것이 여전히 부끄럽고 어색할 때가 많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글쓰기의 글자도 모르던 내가 어쩌다 보니 읽고 쓰는 것이 취미인 작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유명하지도 않고 글쓰기로 돈을 잘 벌지도 못하지만 어쨌든 나는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온전히 할애하여 글을 쓰고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이다.
내 인생에 글쓰기를 되돌려준 것은 다름 아닌 퇴사와 여행이었다. 대책 없는 퇴사 후 여자 친구와 무턱대고 떠난 반년 간의 발리 여행은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나의 글샘을 자극했고, 그동안 내 안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발리섬에서 지낸 반년 동안 남아도는 것은 시간이었고 주변에 펼쳐진 것은 환상적인 풍경들뿐이었으니 떠오르는 생각들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무언가에 홀린 듯 메모지와 펜을 들고 정글과 바다를 누비며 적어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글쓰기는 열 살 이후 침묵해왔던 내면과의 교류가 재개되었음을 의미했다. 그 느낌은 마치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기고 침묵하며 살아왔던 인어공주 아리엘이 목소리를 되찾은 것과도 비슷했다. 그리고 이제 글쓰기는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귀중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글쓰기는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교통사고 같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번개를 맞는 느낌과도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하려면 일단 세상과 통해야 한다.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 퇴사와 여행이라는 인생의 이벤트를 겪으면서 작가가 되어가는 흥미로운 여정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가 아닌 작가로 거듭난 자신과의 만남을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