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우리는 '인간의 뇌에는 있지만 인공지능에는 없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을 자연의 일부로 살아왔으며, 그 오랜 진화의 흔적이 우리의 뇌 속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습니다.
인간 이외의 다른 여러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파충류의 뇌(소뇌)와 포유류의 뇌(중뇌)가 바로 그 증거였지요. 인간 뇌의 아랫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파충류의 뇌와 포유류의 뇌는 인류가 고도로 발전한 기술과 문명을 이루었음에도 여전히 이 지구의 일부이며, 자연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삼 느끼게 합니다.
반면에 인간은 지구상에서(어쩌면 우주 전체에서) 스스로의 탄생의 근원과 그 이유를 궁금해하고 탐구할 수 있는 유일하게 고도로 발달한 지능을 가진 지적 생명체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지구상의 동식물을 지배하고 우주에 탐사선을 보내는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스스로를 닮은 지적 존재를 창조해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과연 인간을 닮은 지적 생명체를 창조해낼 수 있을까요?여러 번 강조했던 것처럼 지적 존재 창조의 비밀은 신피질(neocortex)의 작동원리와 피질기둥(cortical column)에 담겨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 뇌의 가장 겉 부분을 덮고 있는 부분이자 지능의 신비를 담고 있는 신피질의 비밀을 파헤쳐보고 이것이 인공지능과 어떻게 비슷한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피질과 인지혁명
신피질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탄생하기 시작한 약 300만 년 전 발달하기 시작하여, 점점 더 발달되어 왔습니다. 파충류의 뇌가 약 3~5억만 년 전, 포유류의 뇌가 약 1.5~3억만 년 전에 진화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신피질의 발달은 아주 최근의 사건이라 할 수 있지요. 신피질은 인류를 다른 동물들과 뚜렷하게 구분해 주는 뇌의 한 부분이자, 가장 최근에 발달하기 시작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출처 : https://medium.com/@harisggg5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약 7만 년 전 인류가 사고하는 방식에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 덕분에 인류가 지구의 주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이 급진적인 변화는 '허구를 상상하고 믿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상상력 덕분에 종교와 국가 그리고 법이나 돈과 같은 실존하지 않는 개념들을 오늘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협력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 중대한 사건을 '인지혁명(The Cognitive Revolu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저는 이 인지혁명을 뇌과학과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신피질의 크기가 커지면서 임계점에 다 달았고, 우리가 지능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패턴화와 예측 능력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으며 이에 따라 인간의 지능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상상하고 현실로 믿는 능력까지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점차 거대화되고 있는 생성형 AI의 매개변수(parameter)가 우리가 여태껏 알지 못했던 어떠한 초인적인 능력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고 예측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성형 AI의 매개변수가 늘어나면서 GPT-4가 일정한 추론 능력을 가지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2년에 10배씩 커지고 있는 초거대언어모델(LLM)의 가까운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추측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 인공지능과 인간 두뇌의 놀라운 공통점
생성형 AI를 비롯한 현재 대부분의 인공지능 기술들은 딥러닝(Deep Learning)을 활용하여 구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두뇌, 특히 신피질과 이 딥러닝의 작동방식 사이에는 놀라운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1) 신경망(Neural Network)
우선 딥러닝과 우리의 두뇌 모두 일종의 '신경망'입니다. 우리 두뇌는 뉴런이 시냅스(Synaps)를 통해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뉴런이란 인간의 뇌 속에서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신호를 전달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며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물질을 말하는데, 인간은 약 600억 개에서 1000억 개의 뉴런(Neuron)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뉴런에는 자극을 세포 밖으로 전도시키는 돌기인 축삭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축삭의 끝부분과 신경전달물질이 오가는 다음 뉴런 사이의 틈을 시냅스(Synaps)라고 하지요.
생물학적 뉴런과 인공신경망의 뉴런 (https://www.geeksforgeeks.org/)
미국의 신경과학자 프랭크 로젠블라트는 1957년 신경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퍼셉트론(Perceptron)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후 연구자들은 몇 번의 보완을 거쳐 우리가 시냅스라고 부르는 세포 간의 연결을 가중치(weight)와 편향(bias) 그리고 활성함수(Activation Function)를 통해서 딥러닝에 비슷하게 구현해 냅니다. 오늘날 인공신경망이 순전파(Feed Forward)와 역전파(Back Propagation)를 통해 연결하여 신호를 주고받게 하며 정답에 가까워지게 하는 딥러닝의 학습 방식은 우리 뇌가 뉴런을 시냅스를 통해 연결하여 신호를 주고받으며 학습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2) 계층구조
두 번째 공통점은 바로 계층구조입니다. 신피질 전체에 퍼져있는 15만 개의 피질 기둥은 계층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피질 기둥은 6개의 계층(L1~6)으로 구성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계층은 특정한 정보 처리 기능을 담당하며, 하위 계층에서 상위 계층으로 정보가 전달되면서 점점 더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정보로 변환됩니다. 마치 피라미드처럼 계층이 거듭될수록 정보 처리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지요.
아래 그림과 같이 피질 기둥 최하단부의 V1(primary visual cortex)에서 최상단의 IT까지 우리 뇌에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자극을 시각, 촉각, 청각 등 정보로 해석하고 인식합니다.
출처 : 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On Intelligence)
딥러닝 모델 역시 입력층, 은닉층, 출력층으로 이루어진 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계층은 인공 뉴런으로 구성되며, 이 뉴런들은 서로 복잡한 연결망을 형성합니다. 입력층에서 들어온 정보는 은닉층을 거쳐 출력층으로 전달되면서 점점 더 정교하고 학습된 데이터와 매칭되는 패턴을 찾아냅니다. 실제로 딥러닝 모델이 이미지를 학습하고 생성해 내는 프로세스를 살보면 처음에는 희미한 스케치부터 시작하여 학습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또렷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구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출처 : super resolution
또한 딥러닝 모델은 은닉층의 개수가 많을수록 더욱 복잡하고 세밀한 패턴까지 파악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여러 개의 은닉층을 가진 딥러닝 네트워크를 심층신경망(DNN, Deep Neural Network)이라고 하지요. 다음 시간에는 인간 두뇌와 인공지능의 놀라운 공통점 몇 가지를 더 살펴보고 본격적으로 인간 지능을 인공지능에 구현해 볼 수 있을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