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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Apr 07. 2020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리고 불안은 실행으로 덮는다.


조금 무너졌던 멘탈을 추스르고, 그간 나는 묵묵히 케이브 다이빙 트레이닝에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운이 너무 좋았다. 인천발 미국 경유 멕시코 칸쿤 행 비행기를 예약한 게 작년 12월, 그때는 코로나가 맥주 이름인 줄만 알았던 때였다. 밸런타인데이에 한국에 들어왔고, 서울에서 바쁘게 친구 투어를 하던 도중 신천지 31번 확진자가 터졌다. 이후 내 멕시코 케이브 다이빙 트레이닝 계획은 언제 엎어져도 누구도 원망 못 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확진자에 한국발 입국자를 거부하는 국가가 백여 개국을 넘어섰고, 다행히 미국은 한국발 입국을 거부하지 않았지만(이때부터 트럼프는 코로나 관련 한국에 부탁할 여지가 많을 거라 예상해서 잘해주지 않았나 싶다) 항공사가 계산기 두드려 보고 수지 타산이 안 맞아 내 비행 편을 비행 일주일 전 취소해 버렸다. 트립 자체를 취소하기엔 다이브 센터에 이미 지불한 디파짓이 컸고, 한국에 있어도 다이버인 나는 아무것도 못 할 거라 비행 편이 취소되자마자 캐나다 경유 항공편을 바로 예약했다. 비행 전날까지도 항공사 홈페이지를 들락거렸고, 텅 빈 인천공항에서 체크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조금 놓았다. 캐나다까지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괜히 한국인이라 눈치 보였다. 캐나다에서 1박 스톱오버하는 호텔, 저녁 먹으러 식당에 들어섰는데 마침 TV 대형 스크린에서 한국 코로나 확진자가 치솟는다는 뉴스가 연신 나오고 있는데 나 혼자 동양인, 게다가 한국인이었다. 거기서 힐끔거리는 캐나다 사람들의 경계심 어린 눈초리를 한동안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 코로나가 나를 따라다닌다, 했다. 가까스로 나는 멕시코에 도착했고, 며칠 후 캐나다는 국경을 닫아버렸다.


멕시코는 한국발 입국 승객들의 코로나 증상 유무를 공항에서 체크한다는 검역 강화국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 미국에 코로나가 크게 번지지 않은 상태라 칸쿤 공항은 도떼기시장처럼 붐볐고, 이민국 직원은 나에게 한 마디도 걸지 않고 여권에 입국 도장을 쾅쾅 박아줬다. 긴장했는데 좀 허무했다. 시차 때문에도 그랬지만 이틀에 걸친 비행 내내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멕시코에 도착해서도 한 이틀은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 했다.


케이브 트레이닝을 예약한 다이브 센터에 가기 전까지 나는 최대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한국에서 확진자가 사상 최고로 치솟았을 때를 겪어서 그랬는지 이미 사회적 거리 두기 습관이 몸에 배 있었다. 다이브 센터 강사를 처음 만났을 때도, 허그와 키스를 하려던 강사에게 ‘우리 이러면 안 된다, 하하하’ 하고 웃어넘겼다. 이후 유럽에서 터졌고, 미국과 캐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내가 멕시코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칸쿤, 플라야 델 카르멘, 툴룸을 비롯한 유카탄 일대가 텅텅 비었다. 캐나다, 미국, 유럽 다이버들을 주로 상대하는 케이브 트레이닝 다이브 센터는 모든 코스가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문을 닫았다. 내가 트레이닝하는 다이브 센터 강사는 내가 당장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내 트레이닝을 맡아서 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센터에서도 다른 강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불편해 안 되겠다며 코스를 마다하는데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트레이닝하고 싶었던 강사는 다이브 센터 주인이기도 했고, 멕시코 케이브 다이빙 커뮤니티의 수장이기도 했고, 15년간 이곳에 있으며 세노테를 소유하고 있는 로컬 주민들과도 관계가 좋아서 트레이닝할 수 있는 조건에 문제가 없었다. 그녀가 도저히 마음 불편해 이런 상황에서 트레이닝 못 하겠다 했으면, 나는 두말없이 짐 싸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상황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멕시코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매일 밤 점점 텅텅 비어 가는 거리를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며, 점점 문 닫는 가게가 많아지는 한낮 거리를 거닐며, 당장이라도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루에도 수백 번을 고민했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다. ‘글로벌 팬데믹’이라는 상황을 해외에서 겪고 있는 나로서는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은 한국뿐이다. 내가 한국인이어서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는 대부분 불확실함과 불안정함에서 오는 것이다. 멕시코 정부는 계속 우왕좌왕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멕시코 대통령은 사람들에게 “좀 더 밖으로 나가서 외식하고 돈을 많이 써라”였다. 코로나 확진자를 숫자로만 본다면 멕시코는 천 명대에 지나지 않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 숫자를 아무도 안 믿는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아직 테스트하지 않은 것뿐’ 의료 시스템이 선진화되지 않은 멕시코에서, 그것도 코로나 최대 확진자를 가진 미국과 국경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믿기 힘든 수치다. 다행히 대통령은 이렇게 상황 파악 못 하고 있어도, 멕시코 역시 주 정부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라 내가 있는 콴타나오로 주는 저녁에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신신당부하고 있고, 사람들도 이를 잘 따르고 있다. 칸쿤이나 플라야나 내가 있는 툴룸 같은 도시는 미국, 캐나다, 유럽 관광객 없이는 모든 게 굴러가지 않는 곳이어서 손님이 없으니 대부분의 상점이 이미 영업을 중지했고, 로컬들을 위한 식당이나 식료품점은 딜리버리나 테이크아웃 서비스를 하고 있다. 나는 식료품점에서 대부분 식재료를 사서 숙소에서 저녁을 해 먹고, 낮엔 다이빙하니 편의점 샌드위치 같은 거로 때우는데, 나는 먹는 걸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참 못 해먹을 짓이다. 매일 달걀 물에 토스트를 담가 굽고 과일과 곁들여 먹는데 한 달 내내 이러니 죽겠다. 꼬따오에 있을 땐 한국 쌀이나 식재료 구하기가 어렵지 않아 한국 음식을 잘도 해 먹었는데, 여기선 그러질 못하니 더 그렇다. 대부분의 코로나 정보가 스페인어로 나오니 아무리 구글 번역기를 돌려도 확실한 정보로 와닿질 않는다. 그 정보 자체도 하루하루 다르고 우왕좌왕이다. 어느 날은 칸쿤 도시 자체가 봉쇄되었다는 루머가 돌고, 어떤 날은 대형 마트에 물자가 달린다는 루머가 돈다. 그러면 여기 로컬들은 우르르 마트로 달려가 식료품을 사재기한다. 이런 것들이 외국인인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 불안은 엉뚱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내가 만약 여기서 코로나라도 걸리면, 아니 코로나가 아닌 어떤 사고라도 당해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긴다면, 내가 여기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코로나는 아직 멕시코에서 시작도 안 됐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번지기 시작하면, 이곳은 앞으로 나빠지면 나빠졌지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멕시코에 온 이후, 지난 한 달여간 나는 케이브 다이빙 트레이닝에만 집중했다. 하루하루 정보가 다르고 상황이 달라지면서, 내가 트레이닝받는 케이브 강사 Nat은 계속해서 나의 의사를 물었다. “Do you wanna keep going?” 다이빙이 아니라면 난 여기 더는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Nat 역시 나를 계속 트레이닝하고 싶어 해서 우리는 당장 내일 다이빙을 할 수 없게 되더라도 오늘 또다시 정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마야인의 신성한 우물 ‘세노테’에서 동굴 다이빙을 하기로 한다. 우리가 다이빙할 수 없는 상황이란 모든 세노테가 문을 닫거나, 도시 봉쇄령이 내려져 사람들이 집에서 나올 수 없고 차를 몰고 도로를 다닐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은 한, 우리는 계속 다이빙할 수 있다.


물속에만 들어가면 모든 잡생각이 없어진다. 더구나 지금 내가 하는 테크/케이브 다이빙은 준비 과정 자체가 레크리에이션 스쿠버 다이빙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정교해서 하나라도 빠뜨리거나 하나라도 실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더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이 혼돈 속에서도 나는 다이빙을 계속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꼬따오에 있는 대부분의 다이빙 강사 친구들은 다이브 센터가 영업을 중지하고 문을 닫은 터라 모두 직업과 수입을 잃었다. 그리고 모든 비행 편을 중지시킨 태국 정부의 방침으로 대부분 꼬따오에 갇혀있다. 지금도 친구들은 ‘너라도 계속 다이빙할 수 있어 다행이야’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꼬따오에 있는 친구들이나 여기 있는 나나, 우리는 그래도 사람들이 ‘파라다이스’라 부르는 곳에 갇혀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데, 꼬따오에서 자주 했던 생각이 다시 든다. 내 몸이 세상 어디에 있든 내 마음 상태에 따라 그곳이 지옥일 수도, 천국일 수도 있다고.


사이드마운트 과정을 TDI로 다시 훈련받고, 케번 다이버 과정과 인트로 투 케이브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어제가 풀 케이브 코스 트레이닝 첫 번째 날이었다. 원래 계획은 인트로 투 케이브까지 마치고 한 달간 케이브 펀 다이빙으로 경험을 쌓다가 풀 케이브 코스로 마무리하는 거였는데, 상황이 하루하루 달라져 당장 내일 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Nat에게 인트로 투 케이브 끝나고 바로 풀 케이브 과정으로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다행히 Nat은 “너는 충분히 준비됐어. 풀 케이브 코스로 바로 가도 전혀 문제없어” 하고 흔쾌히 내 제안을 수락했다. 어제 내가 모든 다이빙 플랜과 실행을 리드하고 첫 번째 ‘점프’를 했다. ‘점프’는 인트로 투 케이브 다이버는 할 수 없는 복잡한 내비게이션 스킬 중 하나인데, 복잡하게 여러 길로 나 있는 수중 동굴에서 메인 길로 가다가 내가 점프하고 싶은 길로 갔다가 다시 메인 길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다른 길로 나오기도 한다. 수중 동굴에서 복잡한 내비게이션 잘 못 하면 길을 잃고, 결국 공기 부족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케이브 다이빙 사고가 이런 이유로 발생한다. 어제 내 집중력은 우주의 온 기운을 다 끌어모을 정도였다(박근혜는 뭐 하나?). 다이빙 끝나고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도 풀렸다. 장장 120분 정도의 다이빙을 했는데, 동굴 깊숙한 곳에서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에서 별의별 ‘만약에’란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여기서 패닉 되면, 여기서 길을 잃으면, 공기 고갈되면, 라이트가 나가면 등등 이미 모든 비상 상황에 대비한 스킬과 드릴을 연습했고, Nat이 나를 훌륭한 케이브 다이버가 될 거라 인정했지만, 그래도 살짝 멘탈이 나가려고 했다. 나는 이미 동굴 속 깊이 들어와 있었고, 이제 들어온 만큼 차분하게 아무 문제 없이 나가야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우리가 ‘Thumb(다이빙을 마치고 나가자는 신호)’ 할 때 다다랐던 동굴 깊숙한 곳의 커다랗고 웅장한 공간은 숨이 멎을 정도로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비로소 어제 첫 번째 풀 케이브 트레이닝 다이빙을 마치고서야 내가 하는 짓이 얼마나 위험하고 미친 짓인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은 짓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케이브 다이빙은 신체적 요건이나 탁월한 다이빙 스킬은 당연하고, 엄청나게 고도로 단련된 강한 멘탈이 요구되는 하드코어 심리 게임이다. 세상의 모든 케이브/테크 다이빙 선구자들에게 박수와 존경을! 일단 풀 케이브 코스까지 끝내면 나는 복잡한 내비게이션을 필요로 하는 멕시코 케이브 시스템에서 큰 이슈 없이 다이빙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 상황이 이대로만 가거나 더 좋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적어도 풀 케이브 다이버 자격을 갖추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원래 이상적인 나의 계획은 여기 와서 케이브 다이버 커뮤니티도 경험하고 스페인어도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거였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사치가 되었다. 최대한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스페인어 배우겠다고, 친구 사귀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고 다니면(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거다.


마음을 비웠다. 매일 밤 텅 빈 거리를 응시하며 발코니에 앉아 바람을 쐬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오직 가난한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길거리 타코샵에 앉아있는 풍경이다. 멕시코 연방 정부나 주 정부도 아직까진 오직 길거리 타코샵만은 닫지 않게끔 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 경제적으로 수입을 의존하는 도시, 특히 해외 관광객에게 모든 걸 전적으로 의존하는 이 도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휘청거리고 있다.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나. 이 와중에도 돌아갈 집이 있고, 코로나에 잘 대응하는 믿음직한 고국이 있고, 여전히 숨을 멎게 하는 아름다운 세노테에서 케이브 다이빙을 하고 있다. 내 삶에 새로운 경험을 쌓고 있고, 새로운 불안과 불안정함과 싸우며 내 영혼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어떤 날은 걷잡을 수 없이 무기력해지고, 다이빙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 짐 싸서 돌아가고 싶지만,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도 없다. 미국을 2번 경유하면 3일 만에 한국에 갈 수 있긴 하지만, 지금 가장 피하고 싶은 나라는 중국도 이탈리아도 아닌 미국이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이유 없이 힘이 솟아난다. 그래도 오늘 나는 다이빙을 할 수 있고, 또 한 번의 다이빙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오면 나는 좀 더 강해질 거라 믿기에. 가치 있고 해 볼 만한 도전이라 믿기에.


언제고 우리는 멈춰야 했다. 바이러스 때문만이 아니라도 멈춰야 했지만, 우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분명히 이 바이러스 때문에 가장 상처 입을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란 걸 알지만, 꼬따오에서 바다 다이빙할 때도 그랬고, 멕시코에서 케이브 다이빙할 때도 그렇고, 자연과 가까이 살고서부터 늘 주창하던 거였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벌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개발해야 하는가. 인간이 지구에서 지금껏 해온 일은 언제고 한 번 멈춰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인간의 발길이 끊긴 칸쿤의 럭셔리 호텔 존에 온갖 야생 동물과 해양 생명체들이 돌아오고, 중국과 유럽에 대기 오염이 줄어들고, 지구의 오존층이 회복세를 띄고 있다.


나는 여전히 심리적으로 방황 중이다. 여기가 멕시코여서, 지금이 코로나 상황이어서 그런가 하면, 여기가 멕시코가 아닐 때도, 코로나 상황이 아닐 때도 나는 늘 마음으로 방황했다. 지금이야말로 ‘될 대로 돼라’가 맞다. 난 가진 것도 없고 그래서 잃을 것도 없다. 그리고 내일이라도 이곳이 코로나로 초토화되어 짐 싸서 떠나야 한다면 돌아갈 곳이 있고 팔 벌려 날 맞아줄 집과 엄마, 아빠가 있다. 그걸로 됐다. 오늘도 나는 언제고 짐 싸서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이방인이다. 정글 아래 수중 동굴을 탐험할 때 말고는 코로나 세상을 공기처럼 떠다니는, 씩씩하게 혼자 밥 잘 먹고 잘 자는, 여기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실천하고 있는 코로나 강국 코리안 인 멕시코. 내 영혼은 꽤 강하다. 그리고 더 강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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