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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Oct 04. 2021

“도대체 왜 우리를 그렇게 싫어하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2001년 9월 11일, 2997명이 죽었다.


20년 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2대의 민간 항공기에 각각 격추, 붕괴되었다. 이날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 테러리스트가 납치한 항공기는 4대. 3번째 항공기는 펜타곤으로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20년이 지난 내 기억에도 생생한 이야기. 마지막 항공기는 국회를 공격하기 위해 비행하던 중 일반 탑승객들이 조종석 테러리스트들과 맞서 싸워 항로를 틀어 민간인이 살지 않는 평지로 추락했다는 건 몰랐다.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이 전원 사망하고,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공격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죽을 때까지 그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는 미국의 자존심이다. 세계를 호령하며 스스로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경찰’이라 부르는 미국이라는 나라, 그런 나라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에 피를 뿌린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가 그 모습을 동시에 지켜봤다. 미국이 진정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정신을 따르는 나라였다면, 갑절로 갚아주는 피의 복수 대신 희생자와 생존자에 더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세계 1등 시민’이라 믿는 나라에 감히 도전하는 ‘발톱의 때’ 같은 나라에 본때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2021년, 불과 지난달까지 이어진 기나긴 전쟁을 시작했다. 자신들의 우월함과 복수심에 불타는 보복이었다.


“미국의 현대 역사는 911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감독, 브라이언 나펜베게르(Brian Knappenberger)의 말이다. 미국의 역사를 바꾼 단 하루가 나비효과처럼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나에게 지금까지 오래도록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911 이후 나온 미드나 영화에선 무슬림이나 중동 국가 사람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로 나오곤 했다. 한국에 점점 늘어가는 무슬림 사원을 보며 나도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느껴져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알게 모르게 내가 본 미드나 영화, 책을 통해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심어진 거다. 세계는 무슬림과 크리스천들이 종교 전쟁하듯 편을 가르고 있다. 그동안 내 것과 다른 것은 무조건 배척하고 증오하는 풍조는 더욱 짙어졌고,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는 더 밀도 높아졌다.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이 9/11 테러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던 건 참 아이러니다. 그 아이들이 커서 군인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보내졌으니까. 20년 동안 지속된 전쟁이 불과 얼마 전에 끝났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미국은 그들이 바라는 걸 얻었을까. 자신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무슬림을 감시하고 잡아 가두고 고문해도 괜찮다는 법을 통과시킨 건 미국의 오만한 민족 우월주의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내에서도 백인 우월주의와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에 대한 차별은 더욱더 심해졌다. 그래도 괜찮다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심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다른 이들의 생존과 안위를 위협하는 게 너무 오랫동안 정당화되어 왔다. 결국 정치인들이 힘자랑하는 사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가치 없이 죽었다. 대체 20년 동안 미국은 무엇을 위해 싸웠나?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은 60분 분량의 에피소드 5편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조시 부시 행정부 수뇌부들과 CIA, US 밀리터리 베테랑, 탈레반 지휘부, 아프가니스탄 정부 인력, 아프간 군인, 아프간 시민, 9/11 생존자 등 이전까지 카메라에 서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테러 당시 실제 화면 자료들이 쓰였다.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아프간 전쟁이 ‘또 한 번’ 어리석고 소모적이고 혐오와 자만에 기인했음을 비판한다. 


“미국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모두 파괴시켜버리지.” 미드 <홈랜드>에서 탈레반 지도자가 CIA 요원 캐리에게 한 말이다. ‘평화 재건’의 탈을 쓰고 미국의 또 다른 주 하나를 만들러 간 의도 아래, 미국은 크리스천이 아닌 무슬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무슬림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다. 애초에 관심도 노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를 쓰다 20년 만에 아프간을 파괴시켜버리기로 작정하고 떠난 미국. 이 일의 결과가 수십 년 후, 지금 아프간에 남겨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로 나타날 것이다. 


미국은 끔찍하게 힘이 센 나라다. 전 세계 누구든, 어떤 나라든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 같은 맛을 오랫동안 봐온 미국은 절대 그 자리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20년 전,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자존심에 흠이 난 미국이 20년 후 철수하는 과정에 비행기에 매달리다 떨어져 죽는 사람의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죽음에 관심이 없다. 미국인만 안 죽으면 누가 죽어도 괜찮은 거다. 


“도대체 왜 우리를 그렇게 싫어하지?” “세계 평화를 지키는 일등 시민인 우리를, 공격하는 거지?” 미국은 9/11 이후 이 질문의 대한 답을 엄한 데서 찾아왔다. 미국이 이 질문에 대한 성찰을 제대로 하지 않는 한 무자비한 폭력과 테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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