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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Dec 14. 2023

80년대 길 위에 섰던 당신에게

기득권과 싸우다 기득권이 되어버린 당신에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우리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이며, 대한민국의 국체와 정체를 민주정체 및 공화국체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제2항은 국민주권주의, 그 자체이지요. 이 부분이 대한민국 헌법에서 유일하게 ‘권력’이라는 단어가 있는 조항으로, 이후의 모든 헌법 조항은 모두 권력이 아니라 ‘권한’에 불과합니다. 즉, 국가(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비롯한 모든 헌법기관)의 모든 행위는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한정적으로 행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에 수록된 이후, 5차례의 개헌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이 두 줄의 문장을 다르게 해석한 야만의 시대도 있었습니다. 국민은 ‘명목상’의 주권자일 뿐, 실질적인 주권은 통일주체국민회의와 대통령에게 있다는 유신헌법이었지요.


아! 나의 조국 ⓒ 한국일보 고명진 기자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두 문장이 오롯이 설 수 있었던 건 바로 80년대 길 위에 선 당신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아내와 어린 딸을 먹여 살리는 데 바빴던 ‘보통 사람’ 아빠에게 가끔 묻곤 합니다. “아빤, 그때 어디서 뭘 하고 있었어?” 아이러니하게도 신군부 세력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내세운 슬로건이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였습니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이모는 길 가다 툭하면 불심검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수첩에 적어놓은 소소한 일기까지 확인을 했다죠. 그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살펴 주던 사람들도 참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와 왜 우리 이모는 ‘민주화 운동하는 멋진 대학생 오빠’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할까요? <서울의 봄>을 보고 그 시대의 현실을 묻는 서른 된 조카에게 왜 이모부는 “그 민주화 세력들이 지금 이 나라를 다 망쳤다"라고 할까요?


대한민국 시민 모두 80년대 길 위에 섰던 당신에게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귀 막고 눈 가리고 입 막고 고시 준비를 하던 사람도, 각자도생의 시대에 제 식구 먹여 살리려 일만 하던 사람도, 당신을 모른 척 살아온 사람 모두. 당신 또한 길 위에서 피를 흘리고 스러진 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겠지요.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길 위에서 먼저 떠난 동지와 함께 당신이 꿈꾸던 모습과 얼마나 닮았던가요?


‘국가’라는 희뿌연 안갯속에 숨어 권력을 마구 부린 늑대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민에 총부리를 겨눈 장본인이 골프나 치며 호화로운 말년을 보내다 죽는 게 지금 대한민국입니다. 죽고 나서 유골 안치할 곳을 못 찾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당신은 언제 그런 낭만적인 정신 승리와 환상에서 벗어나려 합니까. 


나는 권력과 돈으로 물든 괴물과 싸우다 결국 괴물이 되어버린 당신이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는 자기합리화에 빠진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버린 당신이 보입니다. 그래서 결국 당신의 아이들도 돈과 권력 말고는 삶에서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괴물이 되어버렸지요. 


당신이 길 위에 섰을 때 그러지 않기를 선택했던 늑대 무리는 대부분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라는 주홍 글씨에 당신이 아파할 때 열심히 부와 권력을 쌓은 사람들이지요. 그들 역시 드러낼 수 없는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대부분 괴상하게 비틀어진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가진 것을 지킨다’는 보수가 되어 배지를 달고 있지요. 


일본 시대에도, 군부 독재에도 지켜냈던 저리도 멋지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30년이 채 안 됩니다. 그런 나라에서 지킬 것이 뭐가 있습니까. 여전히 청산하고, 들러 엎고, 깨부수고,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인 대한민국에서 나는 진보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민주화 세력에 더 엄격한 사회의 잣대에 당신은 억울함을 토로하지요. 저들의 들보는 못 보고 왜 자신의 티끌만 탓하냐고. 아니요, 저들이 맞습니다. 당신은 티끌 하나도 없어야 기득권과 싸울 수 있는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운명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당신이 영예롭게 선택한 길입니다. 80년대 길 위에 섰던 그때의 당신처럼 싸워야 합니다. 당신은 ‘군부독재, 유신철폐’라는 싸울 대상과 주제라도 명확했지요. 이미 기득권이 되어버린 당신은 또 다른 기득권과 서로의 허물을 가지고 싸워대지만, 지금 대한민국 보통 사람은 실체 없는 기득권 덩어리에 당신이 속했다는 사실에 허망하고 무기력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언론 탓하지 마세요. 80년대 당신이 그랬다고 해서 2023년 기자들에게 직업윤리나 사명감을 바라지 말아요.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박봉에 복지도 엉망인 기자는 이제 더 이상 ‘업’이 아닌 ‘밥벌이’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는 바로 당신이 만들었습니다. 힘들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방관한 것은 당신의 책임입니다.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은 넘쳐나고 자존감은 사라진 시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하에 학창 시절을 보낸 MZ에게 한심한 눈빛과 손가락질을 보내는 게 전부인 당신에게 한없는 무능함과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에서 이십 대를 보내고 촛불로 박근혜를 탄핵시킨 건 당신이 ‘88만 원 세대’로 전락시키는 데 방조한 우리가 해낸 겁니다. 당신은 끝까지 눈치만 보다 모든 계산을 마치고 나서야 수지 타산이 맞아 거리로 나온 거고요.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하고 불행한 세대가 된 우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말아요. 


오늘도 필요하지도 않은 수많은 것들을 사제끼면서도 종이 빨대를 쓰며 스스로 환경보호자라 자위하는 ‘스마트한 루저’들의 욕망이 가득한 시대를 통찰하십시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소셜미디어로 지구 반대편 억만장자의 침대와 화장실까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더욱 욕망하고 박탈감에 허기집니다. 당신이 젊음을 보낸 80년대와 2023년의 삶의 화두가 같지 않습니다. 그저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지금 젊은 세대가 직면한 문제를 축소도, 확대도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십시오. 그것은 소리 없이 사람이 사라지고 어디론가 끌려가 고문당하던 당신의 시대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지 말고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빼앗기면 또 어떻습니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과 자만을 내려놓고 시대를 직시하십시오. 빠르게 변해버린 시대를 앞서가진 못할망정 쫓아가지도 못한다면, 스스로 자리를 깨끗이 비우고 떠나십시오. 권력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 내려놓아야 합니다. 


해외 생활을 시작한 10년 전만 해도 “두 유 노 싸이?” “두 유 노 김치?”가 전부였습니다. 이젠 더 이상 한국 사람이라 해도 북한인지, 남한인지 묻지 않습니다. BTS, 블랙핑크, 소니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여전히 씁쓸합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는 그 나라의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이름을 대지 않습니다. 아무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요. 나는 내 나라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이미 충분히 쿨한 나라가 되었는데 왜 여전히 대한민국에선 사람이 죽어나갈까요? 그리고 왜 여전히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걸까요? 그리고 왜 사람들은 진정 분노해야 할 대상엔 화내지 않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젊은 아르바이트생이나 택시 기사, 대리운전기사, 식당 종업원, 여자친구에게만 그렇게 분풀이를 하는 걸까요? 자격지심에 허덕이며, 땅값과 집값으로 ‘돈돈돈’만 외치는 천박한 자본주의에 잡아먹힌 대한민국이 되는 데에 당신의 책임이 큽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안에서 점점 더 무력해지는 철학이 부재한 나라가 되는 데에 당신도 일조했습니다.


2023년, 민간인이 우주여행을 하는 시대에 대한민국에선 ‘자유’ ‘전쟁’ ‘공산당’ ‘빨갱이’ ‘종북좌빨’ 같은 단어가 튀어나오는 건, 대한민국의 시계만 거꾸로 가고 있는 건, 바로 당신의 책임입니다. ‘자유’라는 말은 길 위에 선 사람들이 외쳐야 빛을 발하고 의미를 얻습니다. 권력이 ‘자유’라는 말을 많이 쓸수록 탈이 납니다. 역사상 ‘자유’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히틀러였습니다. 사람이 죽어 나갑니다.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 들어온 브랜드 코스트코가 한국에선 노조를 만들 수 없고, 여성, 인종,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에 각종 차별과 혐오가 판치는 건 대한민국은 그래도 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누구도 정치로 자유를 쟁취하거나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정치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욕망의 시대입니다. 권력이 가증스럽게 ‘자유’를 외치며 정작 시민의 ‘자유’를 앗아가는 걸 또다시 그저 손 놓고 쳐다보고만 있지 마십시오. 정신 차리고 시대를 똑바로 직시하세요. 


떠날 수 없다면, 다시 한번 뜨거운 마음으로 그 길 위에 다시 서십시오. 역사라는 나비 효과는 언제나 ‘중도’를 표방하며 어중간하게 가운데에 선 자들의 이기적인 작은 몸짓으로 시작됩니다. <서울의 봄>에서 김의성이 연기한 국방부장관처럼 말이죠. 기사 딸린 고급 세단에 ‘엉뜨’ 켜고 비싼 밥 예약해 먹으러 다니지 말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른 이들의 굽신거림으로 당신의 80년대 희생을 이자까지 더해 받으려 말고, 당신이 80년대에 그랬듯 목숨을 걸고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살피십시오. 끊임없이 폭력과 죽임을 당하는 여성과 미혼모, 명분 없는 인생의 낭비인 군대에 생때같은 시간을 바쳐야 하는 청년, 전세 사기에 오늘도 수면제를 삼킬까 목을 매달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회 초년생, 이번 생은 어차피 글렀다고 일찌감치 체념하고 ‘공정’이란 단어와 ‘사회’ ‘시스템’을 믿지 않는 십 대를 만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그들이 돌을 던지면 맞고, 울부짖고 머리를 뜯으려 하면 잡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80년대 길 위에서 외쳤던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는 아직 대한민국에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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