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하나 Jun 14. 2024

사람은 과연 변할 수 있을까?

‘암살자’를 풍자하는 로맨틱 블랙 코미디 ‘암살자’ 영화 <히트맨>

역사 상 가장 완벽한 로맨스 3부작이라 평가받는 ‘비포’ 시리즈(<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와 <스쿨 오브 락> <보이후드>로 잘 알려진 베테랑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글렌 파월과 함께 한 영화 <히트맨>이 지난 6월 7일, 넷플릭스에서 독점 스트리밍을 시작했습니다.      


데뷔한 지 꽤 오래됐지만 최근에야 <탑건: 매버릭>으로 이름을 크게 알리고, ‘티모시 샬라메에 이어 현재 헐리우드에서 수입이 가장 높은 배우가 된 글렌 파월이 공동 각본과 주연 및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에서 파월이 주연을 맡은 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에단 호크, 매튜 매커너히, 잭 블랙의 뒤를 이어 글렌 파월은 2010년 이후 링클레이터 감독의 ‘페르소나’로 꼽히죠.      


영화제에서의 호평에도 소극적이었던 배급사들을 뒤로하고, 감독은 가장 조건을 제안한 넷플릭스로의 직행을 결정했습니다. 지난해 9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고, 선댄스 영화제에서 기립 박수를 받은 <히트맨>의 총 촬영 기간은 30일, 순수한 즐거움의 폭발과 유쾌한 실험정신이 가득한 로맨틱 블랙 코미디 인디 영화입니다. 로맨틱하고, 섹시하고, 유쾌한 글렌 파월이라는 스타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는 <히트맨>은 현재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Top 10’에서 7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히트맨> 예고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암살범 풍자 로맨틱 코미디 <히트맨>
     

뉴올리언스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 ‘게리’는 소심하고 소소하게 보통의 나날을 보내는 이혼남입니다. 전자공학에 재능이 있는 게리는 경찰서에서 녹음 장비를 운영하는 부업을 시작하고, 경찰 요원 ‘재스퍼’가 히트맨으로 위장해 살인 청부를 의뢰하는 사람들을 유인, 청부살인 자백과 착수금을 증거로 용의자를 구속하는 함정 수사를 돕게 됩니다. 재스퍼가 정직 처분을 받게 되자 현장에서 장비를 다루던 게리가 현장에 투입됩니다. 가짜 암살자 역할에 진심이 된 게리는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본업을 살려 용의자를 미리 연구하고 각 상황에 맞는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몰두합니다. 어차피 청부살인업자 역할은 가짜이니 수십 년 동안 영화 속에서 그려진 암살자의 허구적 이미지를 이용해 의뢰인들의 살인 청부를 자연스럽게 유도하죠. 기가 막힌 분장과 성대모사를 통해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크리스천 베일을 흉내 내는 파월의 모습은 정말 기괴합니다!) 물 만난 고기처럼 게리는 자신이 강의실에서만 외치던 ‘이드(id)’와 ‘에고(ego)’ 사이를 일상에서 넘나들게 됩니다.      



ⓒ 넷플릭스 <히트맨>




<히트맨>은 2001, <월간 텍사스>에 실린 게리 존슨’(1947-2022)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습니다. 존슨은 실제 다양한 가명을 사용해 컨트리클럽 멤버부터 와일드한 폭주족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해 살인 청부를 시도한 용의자 70여 명을 체포하는 작전에서 활약했다고 합니다. 단, 영화의 모든 내용이 게리 존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링클레이터 감독과 파월의 상상력과 허구가 많이 가미되어 있어요.      


         

ⓒ 넷플릭스 <히트맨>의 모티브가 된 개리 존슨






누가 진짜 ‘게리 존슨’일까?
     

<히트맨>은 게리가 펼쳐놓은 암살자의 다중 정체성을 통해 진정한 자아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변할 수 있는가, 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철학 교수인 게리의 강의 장면을 통해 이러한 영화의 주제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아니냐(심지어 게리가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의 이름은 ‘에고’와 ‘이드’입니다)는 크리틱도 꽤 있지만, 은유와 비유로 돌려 말하는 건 적어도 이 영화에서의 방식은 아니라는 링클레이터 감독의 의도라 생각합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철학적 질문을 절대 무겁고 심각하게 다루지 않기로 작정한 듯 보이죠.


ⓒ 넷플릭스 <히트맨>

     

소심하고 사람을 대하는 데 젬병이며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리’는 섹시하고 대담하며 사람들과의 관계에 능하고 개를 좋아하는 ‘론’이 되어 폭력적인 남편의 살인을 청부하는 여성 ‘매디’와 사랑에 빠집니다. 다른 삶을 경험해 보고 싶은, 인간에 내재된 욕구를 좇는 개리의 일상은 점차 론에 의해 잠식되죠. 평소 그를 따분하고 지루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대학교 학생들은 그의 자신감 넘치는 수업 모습에 “우리 교수가 저렇게 섹시했었나?” 의아해합니다.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개리의 성격 심리학에 대한 이론을 개리 스스로 삶에 실험함으로써 증명한 것이죠.     


ⓒ 넷플릭스 <히트맨>


                


‘암살자’를 풍자하는 ‘암살자’ 영화

링클레이터 감독은 대중문화의 망상이자 판타지인 암살자(히트맨)’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해체하고 풍자합니다. 고독한 킬러를 커리어로 가진 미스터리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적 신화에 대한 반항이자 전복이죠. <히트맨>에서 가짜 암살자 개리에게 살인을 청부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그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영화에서 봐온 것처럼 어둡고 끈적한 누아르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면서도 <히트맨>의 개리는 저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암살자를 고용하는 이유에 대한 우스꽝스러움과 진정성을 동시에 강조합니다.      


ⓒ 넷플릭스 <히트맨>



<히트맨>은 ‘암살’이라는 소재의 어둠과 고정관념, 누아르에 머무르는 대신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으로 영화를 이끕니다. 우리에겐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평범한 게리 안에도 자유를 갈망하는 자신감 넘치는 론이 있다는 걸 유쾌하게 보여주죠. 특히 파월의 변신과 능청스러운 연기, 아름다운 여배우 아드리아 아르호나와의 케미는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코미디와 로맨스, 서스펜스, 느슨한 철학적 사유, 누아르적인 어둠의 조용한 색조 사이를 여유롭게 오가는 영화 <히트맨>입니다.     


      

ⓒ 넷플릭스 <히트맨>








매거진의 이전글 드라마 한 편이 던지는 인문학적 질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