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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l 16. 2024

우리가 감각을 말할 때 범하는 오류

우리가 지금 같은 색깔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바닷속 세상에선 뭍에서 살던 인간의 모든 감각이 변한다. 공기보다 밀도가 높은 물속 세상에선 모든 게 더 크고 가깝게 보이고, 음파의 이동 속도가 더 빨라 정확히 어떤 소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아채기 힘들다. 더 이상 코로 숨을 쉴 수 없게 된 인간의 ‘냄새’, 후각은 개념조차 무색해지며 소리를 내기 위해 공기가 필요한 인간은 물속 세상에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오직 수신호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바닷속에서 선천적으로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친구에게 다이빙 가이드를 한 적이 있는데 그날 이후 나는 진정한 ‘감각’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태양이 도달률이 낮아지면서 인간이 색깔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가시광선이 줄어들어 수면 위에서 빨간색이었던 것을 더 이상 빨간색이라 말할 수 없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지 위에서 전방과 좌우 방향만 살피며 다니면 되었던 인간에게 물속 세상에선 온몸을 둘러싼 모든 방향이 열린다. 어떤 이는 새롭게 열린 차원에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 혼란스러워 물속에서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양팔 너비의 거리에 있는 버디를 잡겠다고 팔꿈치 너비만큼만 손을 뻗고는 물속에서 하염없이 춤추듯 헛손질을 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물속에서의 시간은 인간의 모든 감각을 바꿔 뭍에서보다 훨씬 빨리 간다. 다이빙을 마치고 수면 위로 올라온 사람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것 같냐고 물으면, 대부분 10분 정도라 답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1시간 물속에 있었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실제 수중에 머문 시간을 기록하는 다이브 컴퓨터를 보여주면 그제야 자신의 감각의 오류를 받아들인다. 


스쿠버 다이빙이 처음인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이렇게 브리핑을 마무리한다.     

 

원래 인간은 육지에서 태어나고 자라도록 디자인되어 있어요. 우리에겐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아가미도 없고, 지느러미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굳이 스쿠버 장비를 개발해 바닷속에 들어가려고 하죠. 자연을 거스르는 일, 그걸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 물속에 들어가면 두렵고 허둥댈 겁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예요. 연습하고 훈련하다 보면 점점 우리 몸도 물속 세상에 적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이 물속에 있는 것 자체가 자연을 거스르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다이버는 절대 자신감에 넘쳐서도,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교만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바닷속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이빙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닷속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이빙해야 합니다 ⓒ 조하나








늦깎이로 기자 일을 막 시작했을 때 나는 두렵고 막막하기만 했다. 인간의 감각, 그중에서도 시각을 인위적으로 차단해 깊은 어둠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 <어둠 속의 대화> 취재를 통해 나는 평생 의심해 본 적 없는 ‘보다’라는 두 글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다시 볼 수 있다’는 걸 전제로 잠시 체험하는 절대적 어둠 속에서 기존에 시각을 가지고 살아오면서 익히고 학습했던 정보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세상에서 내가 당연히 여겨온 감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어리석게도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들을 내 세계에 채우며 살아가기로 했다. 

  

온 감각이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색깔로 넘쳐나는 자연마저도 개개인이 겪는 일인칭 경험이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만을 감지할 수 있을 뿐 자외선과 적외선은 감지할 수 없다. 과연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의 색깔이 우리가 인지하는 색깔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제로 색깔은 우리가 보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구축하는 눈과 뇌에 의해 규정된다. 인간의 뇌는 종종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과연 모든 인간의 지각이 객관적으로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개인의 경험이나 기대, 감정 상태 등 심리적 요인에 따라 같은 사물을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다. 나에게 빨간색으로 보이는 사물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색으로 보일까? 우리가 지금 같은 색깔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같은 색깔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 조하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라’라고 세상의 온갖 미디어는 떠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가를 알려면 여러 가지 감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경험이 우선이다. 하지만 도시는 회색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가득하다.      


실제 일부 연구에서 도시의 회색 환경이 도시인의 무료함과 우울함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혀졌다. 색상이 인간의 감정과 기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색채 심리학에서 말하는 회색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고 시선을 끌지도 않으며 순종적이고 규격화된 대표적인 중간색이다. 또한 회색은 색채 자극이 적기 때문에 감정적 반응을 덜 유발하고, 과도한 경우에는 무기력함이나 우울한 기분, 사회적 고립감, 우울감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삶과 문화를 연구하며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 의미, 표현, 창조성 등을 탐구함으로써 인간 자신과 타인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인문학이 경시되며 다양한 경험과 감각이 부족한 사람들로 채워진 사회는 자연스럽게 공감대와 연대감이 낮아진다. 평생 학교 밖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엘리트 특권 의식에 빠진 사람들이 한 나라를 대표하다 보니 사회·정치·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소수자의 권리가 소외되고 공감과 연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은 잘 모르는 걸 두려워한다. 가장 위험한 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걸 파괴하는 인간이다. 세계지도에서 북한의 위치를 짚어보라고 물으면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인구의 1/5인 미국이 오랜 시간, 중동 국가를 비롯한 수많은 적대국을 상대로 벌여온 일과도 같다. 인류의 역사에서 벌어진 전쟁과 학살, 제국주의 모두 다르지 않다.                 




가장 위험한 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걸 파괴하는 인간이다 ⓒ 조하나



   





“두려우니까 내가 수영과 다이빙을 배운 거야. 발가락 하나 담가보고 아는 척하는 대신 온전히 푹 빠져보려고.”     


다이빙을 한다고 하면 대뜸 “바다가 무섭지 않아?”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답한다.      


도시와 멀어지고 나서야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절대적이라고 여기던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든 어떤 감각이든 잃을 수 있고, 또 새로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는 수준에 머무는 것은 명백히 부족하다. 알고 있는 것을 겪어보아야 한다. 그것이 경험이다.”     


프랑스 철학자 신시아 플뢰리부터 생태학자 안 카롤린 프레보, 독일의 시인 괴테,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까지 수많은 역사적 인물이 ‘아는 것’보다 ‘경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삶의 경험으로부터의 배움은 끝이 없고 인간은 비로소 이를 통해 ‘아는 것(Knowing)’을 ‘이해하는 것(Understanding)’으로 바꿀 수 있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기계적인 인간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따뜻한 인간으로 무르익을 수 있다.  


나는 오늘 밤 숲 속에서 아직 지구에 닿지 않은 수많은 별들을 생각하며 무한을 말하는 데 있어 여전히 감각의 한계에 부딪히고 무지와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인간으로서 겸손함을 배운다. 도시의 흐리멍덩한 색깔과 날카로운 냉기에서 빠져나와 자연의 따뜻함과 아름다움,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색깔을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눈을 키운다. 그리고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 예술가, 창조가가 되어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에 눈을 뜬다. 



“아는 수준에 머무는 것은 명백히 부족하다. 알고 있는 것을 겪어보아야 한다. 그것이 경험이다.” ⓒ 조하나



Michael Kiwanuka 'Love & H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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