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괜찮아도.

할머니께 조금 죄송해지는 자기애 이야기

by 마리 담다


마치 토요일의 루틴처럼.

오늘도 브런치 글을 끄적여 본다.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고 저번처럼 오래된 메모를 찾아보며 글 쓸 거리를 찾고 싶진 않고 .. 그저 이 밤에 노트북을 켜 끄적여 보는 것이다.


오늘은 가까이 사시는 친할머니와 4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다 집에 돌아왔다.

하루가 다르게 마음이 약해져 가시는 할머니를 보며 세월의 야속함이 느껴졌달까..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홀로 사시는 할머니는 나름 평안하게 사시는 듯 했지만 요새는 우울감같은 것이 생기셨다고 하셨다. 어떤 우울감일까.. 실체가 무엇일까. 노인성 우울증일까..


오늘 할머니께서는 나를 다소 번거롭게 하셨지만, (머리하신다고 오늘 저녁은 같이 못먹겠다고 하셔서 집까지 갔는데 다시 전화오셔서 머리 못한다고 밥먹자고 하신 일..ㅎㅎ) 오늘 할머니가 있어서 감사했다.

저녁식사 끝에 할머니는 이제 자기 밥친구가 되어달라고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혼자 식사하시는 걸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어쨌건 진짜 번거롭게 된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이건 젊은이의 생각이니.. 나는 나 자신도 챙기는 시간을 꼭 가질 것이기에 일단 알겠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는 내게 "결혼은 안할 생각이야?" 라며 물어보셨는데 결혼에는 긍정적이지만 요새 사람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가끔 나갔던 교회도 이제는 낯 부끄러워 가지 못하는 일이 생겨 가지 못하기에.

아쉽게 되었다.


요 근 두달, 내게는 인연이 찾아올 뻔 했다. 아니, 찾아왔었다. 2년 넘게 알고 지낸 교회 오빠였다. 남모르게 감정을 키워오고 그 사람에 대한 기도도 빠짐없이 했던 나였는데, 내가 먼저 인연을 저버리게 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교회 지인분들은 아무도 모르는 과거 심각했던 우울증에 대해 오빠에게 털어놓은 이후로 자책하고 있었던 나에게 오빠는 오랜만에 밥도 같이 먹고 교회 행사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3달뒤에 오랜만에 연락이 온것 이었다. 나를 자연스럽게 교회로 이끌어 주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관계에 집중했던 터였고 오랜만에 찾아온 인연에 너무나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게 화근이 되어 결국은 말아먹었다.

겁많고 오랫동안 연애 경력이 단절되었었던 나에게 꼬박꼬박 카톡으로 관심을 표현해 주었지만, 그 관심도 서로를 알아가기로 한 약속을 한 후에 왠지 모르게 부담으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해주길 부탁했는데.. 결국 알아가기로 한 날 그 날 만나고 난 후 한번도 만난적 없이 며칠만의 폭풍의 카톡들을 뒤로하고 내가 우리 관계에 자신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그 사람이 일을 하고 있건 하지 않고 있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혼자 생각으로만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생각이 계속 난다며 고백을 먼저 해놓고는, 직접 만나보니 생각과는 너무 다른 그 사람의 모습을 좋아해 줄 수 가 없었다. 그러고는 며칠 동안의 많은 연락들이 너무나 마음에 남아 그 관심과 배려가 너무 좋았었는지 미련의 후폭풍이 찾아와 내 자존감까지 흔들리는 지경이 되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마음을 정리하며 많은 것들을 혼자 깨닫고 있는 중이다.

'아, 나는 꽤 조건을 따지는 구나. 사랑만을 보진 않는구나. 그리고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구나. 머리로만 하는 사랑이랑 경험은 정말 많이 다르구나.' 하고 즉각 깨달았다.

그리곤 서로 그만하기로 하고 삼주정도가 흘렀는데, 이제는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방법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꽤 큰 사건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아무리 상상과 다른 그 사람의 모습이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연락을 해주는 오랜만에 받아보는 그 관심에 목이 말라 있었나 보다. 그래서 더 후폭풍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관계에서 오는 채워짐이 너무 그립다보니 상대가 어떻든간에 그 연락 자체가 좋았던 것이다. 어쩌면 이 일로 나는 새로운 인생의 장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지금껏 내가 아닌 다른 것에만 집중하고 그것이 되려고 애만 써온 나 자신이 너무나 불쌍해 보였고, 안쓰러워 보였으니까. 어쩌다보니 자존감까지 흔들려 자기애와 자기돌봄의 세계로 들어왔지만, 너무나 감사한 일이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연애 상대를 잃어서 혼자 머리를 쥐어박고 자책하고 힘들어 했던 한주가 지나고 그런 내가 못나보여서 귀찮아도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여기저기를 탐방하기도 한 것이다.



스스로가 자랑스럽기 되기까지 답답하고 끝이 안보이는 오랜시간을 지나왔고 아직 그 시간을 보내고는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요즘처럼 좋은 시간도 없는것 같다. 일은 일대로 적응을 잘 해나가고 있고 새로운 취향을 발견해 나가고 있는 걸 보면. 그 좋아하던 음악도 다시 많이 듣게 되고. 가수에게 빠져보기도 하고. 또 요새는 미술책, 문화에 관련된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


비록 돈버는 일과는 관련이 없지만서도 이렇게라도 내 관점과 시간, 공간을 환기시는 과정이 한주를 버티는 힘을 만들어준다. 일을 시작할 때 책상앞에 앉아서 조용히 혼잣말로 '지이겨워' 하는 일이 거의 없어진 것을 보면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또 학기가 시작되고 공부를 하게 되면 이런 시간들이 자양분이 될까 아니면 , 이런 시간을 지금만큼은 갖지 못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질까. 궁금하다.


일단은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나를 기다려주기로. 나는 내가 동기가 생길때까지 자연스럽게 둘러보게 놔두거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살아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지금의 시간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다.


내 자신이 안쓰러워 보이는 연민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돌아보게 된, 이해하게 된 살아온 지난 인생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 때와는 다른 지금을 사는 나니까. 무슨 말을 하는거지 ㅎㅎ.


여하튼, 나는 나대로 잘 살고 있으니 괜찮다.

괜찮아도, 괜찮아. 도경수의 노래가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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