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과 의미

by 마리 담다

그동안 집안 사정과 마음의 문제로 인해 브런치에서 멀어졌었다.

신이 없다고 믿고 싶었던 마음도 포기했고,

다시 기도라는 것을 시작했으며 크리스천이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언제 다시 교회에 등록을 해볼지 세례교육을 받을지 그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나는 다시 하나님을 찾았다.


집의 분위기와 어떤 사건들로 인해 하나님을 다시 찾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기도한 대로 마치 내 미래가 그려져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인 것 같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무력감으로 다시 교회를 찾은 것이다.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이 글이 마치 종교적으로 점철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지만,

그 무력감을 어떻게 해보기라도 할 요량이었던 진심이 나를 교회로 이끌었다.


밀라논나님의 에세이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라는 책을 읽고

아, 카톨릭이던 기독교던 종교를 가져봐야 겠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이 글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절친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하느님을 본 적은 없네. 다만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으며 사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는

훨씬 가치 있을 걸세."


또한 이 글귀도 마음에 들었다.


신앙이 있으면 욕심도 정리가 되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죽음이 두렵지만은 않다.

억지로라도 다른 세상이 있으리라 믿고

다른 세상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여기서 조금은 잘 살아보려 노력하게 된다.


부모님이 싸우시는 소리를 들으며 답답한 마음에 기도도 해보고 뛰쳐나가 나도 한 소리 얹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지만, 난 함부로 참견을 할 수가 없었다.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임에 그랬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싸움 이후 번져나가는

악영향과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재정비의 기회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잠시 가까워졌었던 이성과 잘 풀리지 않았을 때 그런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다시 믿음을 회복하셨으면 좋겠다고.

내 마음대로 종교를 정할 수 있는 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의미와 목적 같은 것.

사실, 없다.


그러나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연기는 하고 싶지 않아졌고 내 꿈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어떤 종교를 가질 지는 아직 확실히 정하지 못했지만,

나에게 선순환을 가져다줄 그런 종교를 갖고 싶다.

P.S 놀랍게도 어제 부모님과 교회에 다녀왔다. 진심으로 예배를 즐기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감동했고 눈물을 흘리시며 노래부르시는 아버지의 모습도 마음이 아팠다.

두분이 행복하셨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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